김흥수 김앤장 고문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시장을 연구해 온 현장 전문가다. 삼성맨 출신, 2003년 CJ와 상하이미이더그룹(SMG)이 설립한 홈쇼핑 채널인 동방 CJ 총경리(CEO)로 일해왔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서방 기업들은 영업이익(수익률)을 중시하는 반면 중국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시장 영향력)을 중시합니다. 먼저 점유율을 높이고 그다음에 수익률을 보지요. 반면 서방 기업들은 영업이익이 나지 않는다면 시장 점유율은 의미가 없다고 간주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시장 가진 측이 이기는 겁니다.
미국의 C2C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이베이가 중국에 진출한 건 2003년이다.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을 먹을 것으로 모두 예상했고, 실제로 그리 돌아가는 듯싶었다. 많은 기업이 이베이 플랫폼에 물건을 내놓고,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이베이의 수익(입점 수수료)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국 기업 특유의 '마켓셰어 퍼스트(Market share First)' 전략이 나온 겁니다. 알리바바는 수수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기업이나 개인 사업자는 공짜로 포스팅하니까 좋은 거죠.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연히 타오바오로 몰린 거지요. 포스팅하는 물건이 많은 플랫폼이 이기는 법입니다. 피나는 경쟁 4년, 이베이는 결국 짐을 싸야 했지요.
항상 그런 식이다. 중국 기업들은 적의 핵심을 찌른다. 물량공세를 통해, 아니면 자본력을 동원해 경쟁자의 목을 눌러버려 질식 시킨다. 그렇게 시장을 확보한 뒤 본색을 드러낸다.
김도인 시노스퀘어 대표는 최근 '로컬 차이나'라는 책을 쓴 중국시장 마케팅 기업 시장 분석가. 그는 문화에 대한 이해에서 답을 찾는다. 그가 최근 '네이버 중국'에 쓴 글을 그대로 가져오면 이렇다.
알리바바는 2004년 알리왕왕이라는 이름의 실시간 대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베이(ebay)가 이취왕(易趣網)에서 'Q&A 게시판'을 통해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하던 때였다. 알리왕왕은 이취왕과는 달랐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실시간 채팅이나 음성(영상)통화로 대화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했다. 중국인들은 온라인상에서의 거래라 하더라도 '확인'하고 싶어한다는 속성을 놓치지 않았다. 알리왕왕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바로 이 '신뢰의 갭'을 매워준 것이다.
광고 카피를 한 줄 만들더라도 중국인의 습성을 파악해야 하고, 협상을 할 때에도 그들의 협상술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걸 모른 채 중국 소비시장에 달려들면 망하기 십상이다.
주지하다시피 알리바바는 민영기업이다. 마윈이 세우고, 소프트뱅크 등이 투자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됐다. 국가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과연 그럴까?
알리바바는 IPO(기업공개)를 위한 증시를 상하이나 홍콩이 아닌 뉴욕을 선택했다. 이상하지 않는가? 그렇게 좋은 기업을 서방의 투자가들의 입에 던져놓으니 말이다. 게다가 국내의 재무정보가 모두 뉴욕에 공개되어야 하는데...
김흥수 고문의 얘기를 다시 들어보자.
처음에는 중국 당국도 뉴욕으로 가는 것에 대해 반했습니다. 홍콩을 권했죠. 그러나 마윈이 설득했습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만 달라. 미국에 가서 반드시 적들을 꺾고 오겠다'라고 말이지요. 지금 중국의 최대 관심은 '어떻게 하면 미국의 자존심을 꺾느냐'에 있습니다. 아마존을 무찌르고 오겠다는 말에 허가를 내준 것이지요. 실제로 마윈은 그 어느 미국 IT기업이 하지 못했던 액수로 IPO에 성공합니다.
물론 그랬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홍콩 언론계에서는 '중국 당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마윈이 홍콩 언론을 장악하려는 중국 당국의 의지를 간파하고 먼저 움직였거나, 아니면 당국이 알리바바로 하여금 매입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분석입니다.
중국에 민영기업은 많다. 그렇다고 이들이 순전히 국가와 따로 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화웨이도, 레노버도, 샤오미...그들은 모두 국가가 쳐 놓은 그물 안에서 놀고 있는 작은 새일뿐이다.
외국 기업이 보기에 중국 기업은 얼핏 허술해 보인다. 그러나 어느 정도 맷집을 키운다 싶으면 이내 경쟁자로 다가오고, 피튀기는 시장 쟁탈전을 각오해야 한다.
중국 기업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없이 중국 기업과 싸운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백전백패다.
차이나랩 한우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