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서소문 포럼] 롯데월드타워가 랜드마크다워진 진짜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7.04.0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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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라이팅에디터고용노동선임기자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건설된 지 거의 90년이 흐르는 동안 굳건하게 랜드마크 대접을 받는다. 그저 높아서가 아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 랜드마크의 지위를 누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따로 있다. 보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흑백사진이다. 사진 속 건설근로자는 안전장치도 없이 철제빔에 앉아 점심을 먹고, 줄타기하고, 좁은 철제빔 위를 걷고, 심지어 잠을 청한다. 그 아래 촘촘하게 늘어선 건물은 사진인데도 고소공포증을 유발할 만큼 아찔하다. 남루한 옷차림의 그들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신이자 역사가 됐다. 그 자체가 랜드마크를 지탱하는 랜드마크가 된 셈이다.
 
롯데월드타워가 3일 개장한다. 공사를 시작한 지 7년여 만이다. 개장 전부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랜드마크의 경제적 효과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공업도시였던 스페인 빌바오에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이 들어선 뒤 연간 100만 명이 찾는 관광도시가 됐다. 빌바오 효과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세계 최고층 호텔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는 연간 1000만 명을 끌어들인다. 내부 쇼핑몰은 아랍에미리트 국내총생산의 5%인 50억 달러를 빨아들이고 있다. 롯데월드타워의 경제적 효과가 10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근로자 8820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진 기념관
노동의 가치와 명예를 세운 노동 존중의 랜드마크

한데 내가 이곳을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5층에 나선형으로 꾸며진 ‘타워 건립 기념벽(Wall of Fame)’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555m 높이 줄 하나에 매달려 모진 바람을 견디며 외벽을 세우고, 123층 철골조 좁은 철빔을 걸으며 천길 낭떠러지 두려움 없이 나사를 조이고… 한 사람 한 사람 시련을 도전으로 이겨낸 숭고한 인간 정신의 기록이다.” 입구에 새겨진 이 글을 시작으로 31.5m에 걸쳐 새겨진 기록을 더듬다 보면 발걸음이 얼어붙는다.
 
벽 안쪽에는 공사 사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타워를 만든 사람들-우리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라는 제목이 붙은 벽면 가득 882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00일 이상 험난한 건설현장을 누빈 근로자들의 이름이다. 외국인 근로자 50여 명도 포함돼 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공포를 억누르며 가장 높은 곳에서 일한 근로자, 현장 최초의 여성, 가장 오랜 시간 근무한 근로자, 국내 최초 민간 대테러 담당자와 같은 공사 현장에서 특이한 이력으로 활동한 사람의 사진과 그들의 인터뷰도 있다. ‘자랑스러운 얼굴(Builder’s Pride)’이라는 이름의 공간이다. 그 기개와 자부심은 가위 영웅에 비견해도 손색이 없다. 해설문은 “(건설에 참여한 근로자의) 가족과 자손들에게까지 명예로운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는 점을 기념문에서 드러나게 하였다”고 적고 있다. 타워 외부에도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 조형물이 설치될 계획이란다. 신동빈 회장은 "타워를 건설한 근로자를 역사 그 자체로 대접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이걸 본 한국노총 김동만(현 고문) 전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기억하겠다는, 당신이 우리의 영웅이라는 노동 존중의 랜드마크 아니냐. 내 나라 건축물에 처음으로 노동자의 명예와 자존감을 새긴 것 아니냐”고.
 
공자는 “평생을 살아가는 데 지표로 삼을 한 글자를 꼽는다면 그것은 서(恕)”라고 했다. ‘너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같다’는 글로 조합(如+心)돼 있다. 서로 존중하고 함께하며 배려하는 마음이다. 이걸 지키면 소통이 막힐 일이 없다. 노사가 으르렁댈 까닭도 없다. 롯데월드타워에 새겨진 근로자의 이름을 보면서 공자가 우리에게 준 ‘서’라는 글자가 새삼 다가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많은 난관과 맞닥뜨릴 때마다 해법을 찾아 이겨냈을 그들의 영상이 스쳐가서다. 한겨울 칼바람과 여름의 찌는 듯한 태양을 마주하며 한 층씩 올린 묵묵함이 전해져서다. 이들과 함께하는 게 ‘서’이고 대동사상 아니겠는가. 개장 전날 밤하늘을 수놓은 폭죽에는 어쩌면 그런 노사의 기개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100년이 지난 뒤에도 랜드마크로 남기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김기찬 라이팅에디터·고용노동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