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주도하는 대선후보들과 지금의 조기 대선을 탄생시킨 시민정치 사이의 괴리감은 두 곳에서 현저하다. 첫째,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나아가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까지 뛰어들 수 있는 후보 간 합종연횡 논의에서 시민들은 확실하게 배제되고 있다. 둘째, 유연근무제(문재인), 청년 고용보장(안철수), 전 국민 안식년제(안희정) 등의 장밋빛 공약이 쏟아지고 있지만 촛불시민들이 뜨겁게 요구했던 “응답하라 2017 민주주의”에 대한 후보들의 응답은 그저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다.
‘정책연합’ 없고 ‘승리연합’ 판쳐
정책공약도 달콤한 사탕발림뿐
청와대 축소와 소통 공약은 빈약
대선후보들, 잠시라도 조용히
이번 대선 뿌리를 돌아보기를
하지만 합리적 선택으로서의 후보연합은 넓게 보아 오직 선거 승리만을 앞세우는 ‘승리연합’과 가치의 공유를 전제로 하는 ‘정책연합’으로 구분된다. 촛불민심에 화답하기 위해 신생정당의 가시밭길을 기꺼이 택했던 바른정당이 불과 수개월 만에 옛집인 자유한국당과 후보 단일화를 논의하는 데에서 가치에 대한 존중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낡을 대로 낡은 발전주의, 국가주의를 부둥켜안고 있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후보연합은 곧 새로운 보수마저 다시금 하나의 낡은 보수로 뭉뚱그려지는 역사의 퇴행을 의미한다.
결국 이념과 가치를 외면하는 편의적 승리연합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역습이 이어질 것이다. 보수연합 후보를 거론하면서부터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가라앉는 사례가 보여주듯이 (유 후보는 서둘러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시민과 지지자의 동의가 생략된 자의적 승리연합은 지지의 급격한 이탈과 변동을 부르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이념과 가치를 외면한 후보연합은 불안정한 모래성에 불과하기에 설사 당선되더라도 사상누각의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그동안 촛불민심, 국회의 탄핵소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이어져 온 시민정치의 강력한 동력은 정부의 시혜적인 퍼주기 정책을 요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시민들은 생활세계의 고단한 경험을 통해, 노인빈곤, 청년실업을 단번에 해결할 마법의 공식이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을 우리가 일거에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난 수개월간의 함성과 촛불민심이 요란하고, 실현 불가능한 공약들의 말잔치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바라보는 정부, 소통하는 대통령이 시민들 요구의 핵심이었다.
후보들은 지금쯤 빈틈없이 짜여진 일정, 후보 경선장의 열띤 분위기, 1000여 명을 넘나든다는 정책 참모들의 충성 경쟁 속에서 이번 조기 대선 무대가 누구에 의해, 왜 차려졌는지를 잊곤 할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진 대선후보들이 매일 잠시라도 이번 대선의 뿌리를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 시민들과의 거리는 좁혀지고 이번 대선의 의미는 완성될 수 있다.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