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난 꼭 그런다. 저요? 인천 짠년인데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보고 배운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짠에 년까지 붙이고 마는지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특히나 평생 노동자로 근무한 동일방직을 중심으로 동구 안팎을 다닐 때면 유난히 목소리가 커지는 게 아빠다. 어린 나를 무동 태워 신나게 드나들던 단골 가게에 작정하고 들를 때면 더더욱 목청을 높이는 게 아빠다. 몇 대에 걸쳐 이어지는 가게마다 고주망태 아빠를 기억하는 부엌 할머니들이 꽤 있었으니, 어느 날은 대구탕 할머니가 맨발로 뛰어나와 아빠를 와락 끌어안았고, 어느 날은 주꾸미 할머니가 아빠를 보고 주저앉아 눈물 바람인 적도 있었으며, 어느 날은 중국집 할머니가 아빠에게 고기 튀김 한 접시와 고량주 두 병을 품에 안긴 적도 있었다. 돈깨나 뿌린 덕분이지, 안 그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뻘 되는 가게 주인아주머니는 죄다 양어머니 삼던 아빠의 연한 기질 탓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나는 아빠만의 분명한 미각에 더한 신뢰를 품어왔다. 최소한 맛없는 집은 두 번 다시 안 가는 단호함이 또한 아빠에게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아빠랑 자주 술을 마시고 북성포구에 걸으러 다녔다. 초입에 조개 까는 할머니들 보러 간다는 게 핑계기도 하였지만 실은 아빠랑 걷고 싶어 북성포구에 가곤 했는지 모른다. 북성포구라 쓰인 간판을 따라 들어가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쇠락한 횟집 몇이 있고 그 옆으로 난 바다가 보인다. 물이 차면 유한락스 통이나 사이다 병이나 검은 튜브가 둥둥 떠 있는 바다지만 물이 빠지면 살이 어지간히도 쪄서 뒤뚱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갈매기들 천지가 되는 검은 땅.
시인 김민정 추천, 인천 북성포구
김민정(시인)
작가 약력
1976년 인천 출생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
시집으로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산문집으로『각설하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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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한달 동안 매주 금요일 한국의 대표 작가들이 추천한 여행지를 중앙일보 지면과 온라인을 통해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