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마이크] 5분이면 되는 한 표 행사, 내게는 5시간의 장벽

중앙일보

입력 2017.03.30 02:46

수정 2017.03.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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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1급 장애를 갖고 있는 A씨(46·여·서울 성북구)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지방선거가 치러진 2014년 6월 4일이었다. A씨는 만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가질 수 있는 ‘한 표’를 행사하기로 했다.
 

시민마이크

외출 채비를 마치고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다. 기다린 시간은 2시간. 투표장에 도착한 A씨는 당황했다. 기표소는 계단을 지나가야 갈 수 있는 2층. 그의 전동휠체어로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도움을 청했다. 한참을 기다리자 투표 사무원이 나타났다. 1층 로비에 임시 기표소를 마련해 주겠다고 했다. 기표소를 세우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기표소는 휠체어가 들어가기에 좁았다. 투표를 마치고 다시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다. 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5분이면 끝날 투표에 5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뇌병변 장애 A씨 2014년 지방선거
장애인 콜택시 불러 겨우 투표소 가니
2층에 있어 전동휠체어 못 올라가
결국 임시기표소 따로 세웠지만
밖에서 보여 비밀투표 보장 안 돼
선관위 “장애인 투표 접근성 확대”

시각장애인 B씨(42·남·서울 송파구)는 “2014년 지방선거 때 주민센터 직원이 기표소에 들어와 대신 표를 찍어줘 불안하고 불쾌했다”고 했다. 평소 도움을 주는 활동보조인과 기표소에 들어가려 했지만 주민센터 직원이 막아섰다. 공직선거법상 활동보조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돼 있지만 거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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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중앙선거관리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

오는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장애인 선거권을 보장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지난해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전 투표소 3511곳 중 17%(598개소)가 1층에 있지 않음에도 승강기를 갖추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지체장애인과 거동이 불편한 유권자들의 투표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총선 사전투표소의 84%에 1층 투표소와 승강기를 확보하는 등 장애인의 투표 접근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며 “오는 대선에서도 기관과 시설 내 기표소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운영 매뉴얼과 교육 동영상을 제작·배부했고, 장애인거주시설 담당자를 대상으로 사전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애인 단체들은 특히 법 개정을 통해 장애인 거소투표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제38조)은 요양시설 등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부재자 투표의 일환으로 시설 내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정훈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장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거소투표 신청이 이뤄지고, 선거권이 대리행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당도 거소투표 장소엔 참관인 안 보내”
 

자료: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중앙선거관리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

실제로 강릉에서는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시설 직원들이 장애인 36명의 의사를 묻지 않고 거소투표 신청을 한 것이 드러나 기소됐다. 경남 양산의 한 시설에서도 지난해 선거에서 62명에 달하는 거소투표 부정신고가 적발됐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해 거소투표신고인 수는 약 5만 명. 선관위는 “의사표현이 원활하지 못한 노인이나 장애인 유권자를 대상으로 본인 의사에 반해 거소투표신고를 하거나 대리 투표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공직선거법상 거소투표인이 10인 이상이 될 경우에만 기표소 설치를 의무화한 데다 각 정당조차 거소투표 장소에 참관인을 보내지 않는 등 관심이 전무해 사실상 견제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장애인들이 직접 지역사회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가 취재했습니다
중앙일보·JTBC가 만든 시민 의견 수렴 사이트인 ‘시민마이크(www.peoplemic.com)’에 올라온 시민들의 의견과 제언을 직접 취재해 보도합니다. 생활에서 느낀 불편이나 생각을 올려 주시면 저희가 함께 고민하고 기사화합니다.
 
◆특별취재팀=이동현 팀장, 김현예·이유정 기자, 조민아 멀티미디어 제작, 정유정(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인턴기자 peoplemic@peoplem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