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진입하는 데 걸린 기간은 9년(88→97년)이다. 독일은 8년(87→95년)이었고 일본은 5년(87→92년)에 불과했다. ‘영국병’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성장 과정에 난항이 많았던 영국도 11년(91→2002년)이었다.
한국은 이미 이 기간을 넘겼다. 국내·외 경제연구기관에선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설 시기를 2018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2%대 저성장이 고착화한 상황에서 이 역시 장담하기 힘들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결국 제조업의 성장을 발판으로 한 서비스업 산업의 선진화인데 한국은 그 타이밍을 놓쳤다”며 “그동안 성장 동력이었던 제조 부문마저도 전통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 구조조정 실패가 이어지면서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으로 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2만7000달러대 국민소득마저도 서민 가계에선 체감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유는 따로 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원화로 환산해 단순 계산하면 가구당 연간 소득이 1억2000만원을 넘어야 하겠지만 한은이 발표하는 ‘국민소득’ 통계엔 기업과 정부 몫도 있다.
여기에다 지난해 전체 국민소득 중 가계가 차지하는 몫도 줄었다. 나라 밖으로 나간 근로자 송금액, 해외 원조, 국제기구 분담금 등을 뺀 국민총처분가능소득(GNDI) 가운데 가계 소득 비중은 2015년 57.2%에서 2016년 56.9%로 감소했다. 기업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이 기간 20.8%에서 20%로 줄었다.
반면 정부가 가져간 소득 비중은 22%에서 23.1%로 증가했다. 그만큼 세금 수입이 많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지난해 본예산 대비 19조7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었다. 정규일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세금 수입이 호조를 보이면서 정부의 소득 비중이 늘었다”며 “가계는 이자 소득이 줄고 기업 역시 영업이익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소득 비중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총저축률(가처분소득 대비 저축 비율)이 35.8%로 외환위기 직후인 99년 이후 최고를 기록한 배경에도 정부가 있다. 여유 자금이 부족한 탓에 가계의 저축률은 2015년 8.4%에서 지난해 8.3%로 줄였다. 같은 기간 기업 저축률도 20.2%에서 19.7%로 낮아졌다. 정부 부문의 저축률만 7%에서 7.8%로 상승했다. 낮은 금리와 경기 둔화로 가계와 기업이 벌이가 줄었지만 정부는 살림살이만 좋아졌다는 의미다.
국민소득이 늘어나려면 기본적으로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 가운데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선 국가는 일본과 싱가포르 정도다. 2000년 이후 평균치로 보면 일본은 3만7000달러, 도시 국가이긴 하지만 싱가포르는 3만9000달러 수준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일본·싱가포르와 북미·유럽 주요국 같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4만 달러대에 이른 국가는 법과 제도, 규제의 운영 방식, 국민의 의식 수준, 교육시스템, 축적된 과학기술 등 오랜 기간에 걸쳐 무형의 자산을 쌓았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한국이 명실상부하게 선진국 클럽에 들어가려면 외형적인 측면은 물론 질적인 성장 측면에서도 제도·교육·기술 체계 전반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 2016 국민계정 살펴보니
저성장에 발목 잡혀 3년째 제자리
세금 잘 걷혀 정부 소득 비중은 늘어
미국·일본은 9년 내 3만 달러 진입
한국, 제조업 등 전통산업에 의존
구조조정 실패 땐 장기 불황 우려
교육·기술 인프라부터 다져나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