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또한 벨기에 브뤼셀에서 폭탄 테러가 있은 지 딱 1년 되는 날이기도 했다. 유럽에서 한 해에도 몇 건씩 테러가 터지는 상황에서 이제는 지난해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새삼스럽기까지 한 지경이지만 말이다. 사실 몇 년간 유럽에서 다음에 테러가 벌어질 곳은 런던이라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있었으니 아주 뜻밖의 일을 당해 놀란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오히려 올 것이 드디어 왔다는 분위기에 가깝다고나 할까. 평온하던 일상이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된 듯한 날. 오전에는 브뤼셀 폭탄 테러 현장에 가서 지난해 테러에 관한 생방송을 진행하는 것을 보았는데 오후가 되니 생방송의 무대가 바로 런던이 되어 버렸다.
공포로 일상을 유지 못하도록 하는 게 테러범들 목표
범인과 같은 종교, 민족이라 비난 않는 게 일상의 유지
일반인을 목표로 무차별적으로 벌이는 테러가 의도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의 일상이 유지되지 않는 것. 살아가던 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 즐겁거나 평안하게 살지 못하는 것. 공포로 인해서. 그래서 결국 굴복하게 하는 것이 테러범들이 바라는 바이니 오히려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테러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은 움츠러들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살던 대로 평상시처럼 살아가는 것뿐이다.
테러가 일어난 후 내가 일하는 사무실의 나이 든 변호사가 ‘그들’이 좋아하지 못하게 겁먹지 말고 살아가되 워털루 역을 지나갈 때는 한가운데로 지나가지 말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왜? 천장이 다 유리이니 폭탄이라도 터지면 부서져 떨어져 내리는 유리 때문에 더 심하게 다칠 거야. 그러니 가능하면 벽에 붙어서 지나다니라고. 한층 경계가 삼엄해진, 그러나 다들 일상적으로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듯이 보이는 워털루 역을 지나가며 천장을 잠시 올려다보면서, 이거 뭐 피할 방법은 없지 않겠나 생각했다.
하지만 섣불리 타인을 의심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피할 수 있는 일이다. 사건 직후 범인이 무슬림일 것이라는 추측에 맞서 미리 단정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같이 터져 나왔다. 결국 범인은 개종한 무슬림 극단주의자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세상에는 선량하고 극단적이지 않으며 테러와 아무 관계 없는 무슬림이 훨씬 더 많고 이들이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이다. 단지 범인과 같은 종교를 믿거나 같은 민족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쉽사리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것. 어쩌면 이 부분이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일상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경계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신뢰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테러가 일어나기 전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