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오른손 투수 한승혁(24)이 시범경기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시속 157㎞의 ‘광속구’로 5경기에서 5이닝 1피안타·무실점을 기록한 덕분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대표팀의 무기력한 모습에 실망했던 야구팬들은 한승혁의 강속구를 보며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다”며 열광하고 있다. 지난 21일 광주에서 만난 그는 “(쏟아지는 관심에)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제구 좋아진 KIA 투수 한승혁
공 빠르지만 불안했던 ‘미완 대기’
투구 폼 다듬고 멘탈 다져 대변신
시범경기 5경기 5이닝 무실점 역투
허벅지 27인치 ‘탄탄한 하체’ 강점
팬들 “꿈의 160㎞ 볼 수 있나” 기대
그는 덕수고 시절부터 시속 150㎞의 공을 던졌다. 모자 챙에 ‘내 공은 아무도 못친다’라고 써놓고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한승혁은 2011년 KIA에 입단(전체 8순위)하자마자 오른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1년 간의 재활훈련을 마치고 마운드에 섰지만 볼 컨트롤이 좋지 못했다. ‘미완의 대기’라는 수식어는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 다녔다.
한승혁은 자신을 지도해준 이대진 코치를 믿고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의욕이 앞선 나머지 지난 시즌 초 옆구리 부상을 당했다. 6월 중순 복귀한 이후 그는 3승2패9홀드 평균자책점 4.86을 기록했다. 데뷔 이후 가장 좋은 피칭이었다. 한승혁은 “지난 시즌 말부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게 이어져 올해 시범경기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무조건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애쓰다 보면 피칭 밸런스가 흔들려 제구가 나빠진다. 수많은 강속구 유망주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쓰러진 이유다. 그래서 투수들은 제구력을 높이기 위해 스피드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단점을 보완하려고 장점을 버리는 것이다.
자신감도 그를 변화시킨 원동력이다. 과거 한승혁은 볼넷을 내주거나 홈런을 맞으면 고개를 푹 숙인 채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결과에 관계없이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부러 거울을 보며 표정 연습도 한다”며 “예전에는 잘 치는 타자를 상대할 때 주눅이 들었는데 지금은 타자보다 내가 더 크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른다”고 했다.
한승혁의 아버지는 배구 국가대표 공격수로 활약했던 한장석(55)씨다. 한승혁은 “아무래도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빠른 공을 던지는 것 같다”고 했다. 탄탄한 허벅지는 강속구의 원천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하체 운동에 신경썼다. 고교 시절 허벅지 둘레가 26~27인치 정도였다. 지금은 조금 늘어났을 거다”고 했다. 그는 또 “부모님의 정성 덕분에 어렸을 때 좋은 음식을 많이 먹었다. 학교 다닐 때 늘 배가 불러 매점을 다닌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김기태 KIA 감독은 그를 이번 전지훈련 최우수선수로 뽑았다. 김 감독은 “승혁이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한다.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칭찬했다. 한승혁은 “나는 아직 미생(未生)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갈길이 멀다. 앞으로 더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공을 던지겠다”고 했다.
쌀쌀한 날씨에서도 강속구를 뿌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팬들은 한승혁이 ‘시속 160㎞’의 공을 던지길 기대한다. 그러나 한승혁은 단호하다. 그는 “볼 스피드가 더 늘어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컨트롤이 우선”이라고 했다.
광주=김원 기자, 사진=김진경 기자 kim.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