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삼정회계법인의 실사보고서를 인용해 “대우조선이 도산한다면 국가 경제적 파급효과가 최대 59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건조 중인 배 114척 대부분이 계약 취소로 고철 처리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임 위원장은 “숫자를 부풀린 공포 마케팅이 아니라 노출된 위험을 계산한 것”이라며 “대우조선 정상화가 국민 경제에 바람직하다”고 지원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도산 땐 경제 손실 59조원”
정부, 이번엔 살리겠다지만
1조대 회사채 채무조정 난관
합의 실패 땐 사실상 법정관리
정상화까지는 걸림돌 많아
노조 등 고통분담 전제돼야
지원을 결정한 시점을 두고도 논란이 적지 않다. 대선이 한 달 반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대우조선 회사채 중 4400억원은 만기가 다음달 21일 돌아온다. 2015년 10월 결정된 지원금 중 남은 금액은 3800억원. 따라서 여기에 약간의 자금만 추가 지원해도 일단 4월 위기는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정부과 채권단은 대우조선이 2021년까지 버틸 수 있도록 하는 지원 계획을 짰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정치권 누구도 대우조선을 망하게 하자고 할 수 없는 대선 기간”이라며 “금융위가 지금 대우조선 살리기에 나섰다는 자체가 정치적 행보”라고 지적했다.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조선업은 훗날 다시 한국 경제의 효자산업이 될 것”이라며 정부의 대우조선 지원안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했다.
금융위와 산은은 이해관계자 모두의 손실 부담을 전제로 자금을 지원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밑 빠진 독’의 밑을 틀어막은 뒤에 물을 붓겠다는 뜻이다. 채권자들은 채무 재조정에, 대우조선 노조는 인건비 25% 감축에 합의하는 게 자금 지원의 조건이다. 따라서 정부가 짠 구조조정의 틀대로 가려면 큰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 다음달 17~18일 열릴 사채권자 집회에서 총 1조3500억원의 채권을 보유한 회사채 투자자가 50% 출자전환과 잔여분의 만기 연장에 동의해줘야 한다. 사채권자 중 큰손은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 이 중 ‘최순실 게이트’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국민연금은 정부의 편을 들어서 채무 재조정에 쉽게 동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채무 재조정은 정부 입김이 아니라 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의 반발도 적지 않다. 4월 21일 만기인 ‘대우조선해양6-1’ 채권 보유자들은 “만기 상환을 얼마 안 남겨두고 출자전환과 만기 상환 유예라니 부당하다”고 아우성이다.
금융위는 자율적 합의에 실패하면 사실상 법정관리인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에 들어가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채권단의 신규 자금 지원을 전제로 3개월 정도의 초단기 법정관리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벼랑 끝’ 전술이 결국 통할 거라고 내다본다. 정부는 이번 구조조정으로 대우조선의 재무·수익구조가 개선되면 주인 찾기에 나설 계획이다. 내년에 조선 업황이 살아난다면 인수합병(M&A)을 추진키로 했다. 사실상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을 통째로 인수하는 방안을 염두에두고 있다. 임 위원장은 “차기 정부가 검증해서 계획을 수립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국내 조선산업을 빅3에서 빅2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한애란·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