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취재일기] 사드는 사드고 축구는 축구다

중앙일보

입력 2017.03.23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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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스포츠부 기자

중국 창사에서 열리는 한국과 중국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23일 오후 8시35분)은 두 나라 모두 물러설 수 없는 경기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본선 진출 가능성이 희박한 중국에도 이번 경기는 특별하다. 창사는 중국 사람들이 ‘건국의 아버지’라 부르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의 고향이다. 중국 축구대표팀이 8차례 A매치에서 4승4무를 기록하며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축복의 땅’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이번이야말로 ‘공한증(恐韓症)’을 극복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한국과 중국의 이번 맞대결은 ‘사드 매치’라는 엉뚱한 이름으로도 불린다. 한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를 결정한 이후 중국 내 반한(反韓) 감정이 고조됐다는 현지 보도가 잇따르면서 등장한 용어다. 창사는 중국 내에서도 열정적인 축구팬이 많은 도시다. 뜨거운 응원 열기가 반한 정서와 맞물리면 경기장 안팎에서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취재진과 응원단의 안전을 우려한 대한축구협회는 “창사에서는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불필요하게 현지인들을 자극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한·중전이 열리는 중국 창사 허룽 스타디움. 중국 공안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창사=송지훈 기자]

지난 20일 창사에 건너와 보니 현지 분위기는 차분한 편이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큰 도시에선 한국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곳에서 한국인을 적대시하는 분위기는 느껴보지 못했다. 공항 입국심사원·공안 등 만나는 사람마다 “축구 때문에 왔느냐”며 친근하게 대했다.
 
창사의 한 택시기사는 “중국이 러시아와 잘 지내는 것처럼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걸 이해한다”면서 “중국과 한국이 최근 몇몇 문제로 갈등이 생겨 아쉽지만 그건 두 나라 정부의 문제다. 우리는 한국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축구대표팀 훈련장에서 만난 중국 기자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중국 기자는 “사드에 대해 정확히 모르면서도 ‘우리에게 뭔가를 겨누고 있다’는 점 때문에 불쾌해하는 중국인이 많다”며 “그래도 중국에서 축구 경기와 사드를 엮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기장에서 과격한 팬들과 마주칠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고 했다.
 
축구는 내셔널리즘을 먹고사는 스포츠다. 그러나 정치적 이슈는 철저히 배격한다. 한 세기가 넘는 긴 세월 동안 축구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비결이기도 하다. 그라운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스물두 명의 선수들과 축구공뿐이다. 승패를 떠나 오늘 밤 한국과 중국의 젊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페어플레이를 펼쳐주길 기대한다.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