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국가 운영의 기본 규칙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권위주의 시대를 넘어 평화적 민주화에 성공한 1987년, 우리가 뽑은 국회에서 개정한 헌법을 국민투표로 확정 짓던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헌법을 지키고 따르겠다는 것은 국민이 함께한 약속이며 동시에 각자 자신과의 약속이기에 이를 지킨다는 것은 당연한 국민의 도리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의 의견과 정서가 심각하게 갈라지고 흥분이 고조된 상황에서,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공공윤리를 따르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평화적으로 인내하며 기다렸던 우리 국민의 성숙한 자세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탄핵정국이 점화한 흥분에
분열 심화될 위험 매우 커
소영웅주의 만연 억제하고
50여 일로 다가온 대선에서
인화성 가장 큰 안보 문제는
후보들이 현명히 대처해야
민주국가는 다원적 사회로 획일적이지 않은 여러 세력과 집단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체제를 이른다. 국가적 의사결정의 원칙은 ‘다수에 의한 통치, 소수의 권리 보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많은 국민이 광장에 모이게 되면 소수는 보이지 않고 다수는 더 크게 확대되는 다중의 역학이 작용하기 쉽다.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 그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는 이정미 재판관 퇴임사의 한 구절이 바로 여러 집단과 의견의 집합체인 민주공동체의 운영 원리를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탄핵 정국이 만들어낸 광장의 열기가 곧장 대선 정국으로 이어져 국민 화합보다는 분열의 심화를 초래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정치·경제·사회·문화·기술 등 모든 영역에서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어떤 민주사회이든 보수와 진보는 있게 마련이나 보수와 진보 모두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개혁이 있어야만이 건전한 민주사회가 지탱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는 통합보다도 대결과 분열을 조장하기 쉬운 생리를 갖고 있다. 분열의 심각도는 선거의 주요 쟁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불과 50여 일 후에 치러질 19대 대통령 선거에선 최대 쟁점으로 국가 안보가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론은 국민을 극명하게 둘로 갈라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대통령 탄핵 여부를 놓고 갈렸다고 하지만 사드 배치를 둘러싼 국가 안보 정책, 특히 한·미 동맹에 대한 입장 차이도 보다 근원적인 대결 요인이었다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4월 중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지만 과연 사드 배치 문제 등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의 전략적 균형의 문제, 북한 핵에 대한 공동 대처 문제 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사드 배치 등 안보 문제가 대선에서 국민 분열을 초래하는 최대 쟁점이 될 가능성에 대한 정치권의 현명한 준비가 시급히 요구되는 것이다.
탄핵 과정의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예외적으로 행해지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준비 기간이 매우 짧은 만큼 후보와 정당들에는 강력하고 자극적인 발언의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인 국가 안보는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생명을 담보하는 것으로 대중적 인화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나라와 민주주의의 안정을 위해 책임지는 자세가 필수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