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승우(58)씨의 새 장편 『사랑의 생애』(예담·사진)는 그래서 눈길을 끈다. 생물학적 보고서를 연상시키는 제목, 장편 치고는 단순한 이야기 얼개 안에 ‘사랑의 일반법칙’이라고 할 만한 생리와 속성들을 깨알 같이 담았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착상은 사랑을 자족적이면서 능동적인 하나의 생명체쯤으로 봐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사랑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사람은 장소를 제공하는 숙주(宿主)일 뿐 바이러스나 기생 생물 같은 사랑이 몸 속에 찾아들어와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사람을 부린다. 당연히 사랑은 생로병사를 이어간다. 그래서 ‘사랑의 생애’다.
새 장편 『사랑의 생애』 펴낸 이승우
“다양한 애정현상 관찰한 결과물
연애에 도움 줄 수 있는 실용서죠”
“과거에 사랑 안 한 사람 있나. 실은 널려 있는 게 사랑 이야기이다. 이번 소설은 현상을 관찰한 결과물인데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물 속에 있는(사랑에 빠진) 사람은 정신 없이 물과 놀아야지, 그러다 물 밖에 나왔을 때 비로소 헤엄치는 원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 나이쯤 되면 사랑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 자전적 작품인가. 물에서 나온 지는 얼마나….
- “일종의 후일담 문학이라고 보면 된다.”
- 사랑의 상대방은 결국 타인이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한 철학자도 있는데.
- “사랑은 신비스럽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엉뚱한 행동들을 하곤 한다. 그런 현상은 하나도 이상한 게 아니다. 병적인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에 대해 알긴 알아야 한다.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럼 최소한 연애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실용서다. 사랑의 심리학이랄까. 가벼운 기분으로 썼다.”
소설은 36개의 짧은 장(章)으로 나뉜다. ‘키스와 사랑’ ‘만진다는 것’ ‘결투와 질투’ 등 호기심을 부풀리는 제목의 각 장들은 형배·선희·영석·준호 등 주요 인물들의 엇갈리는 드라마 안에서 서식하는 사랑의 각 생장단계에 대응한다. 인물들은 최소한의 역할을 부여받은 심리극 배우들 같다. 부족한 서사의 구멍을 메우는 건 역시 사랑에 대한 이씨의 관찰과 통찰이다. 이씨는 특유의 논증 스타일 문체로 설득력 있게 사랑의 일반 명제를 설파한다. 가령 사랑이라는 인간 감정이 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작용에 불과하다는 진화생물학의 주장에 맞서 사랑이 먼저 깃든 결과 도파민을 배출하는 것이라고 하고, 사랑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눠 분석한다. 세 번 약혼하고 세 번 파혼한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사례를 들어 사랑을 못 할 거라는 불안, 지금 붙잡히면 사랑에서 영영 헤어나지 못할 거라는 공포 사이에서 갈가리 찢기는 남성 심리를 전한다. 줄거리보다 사랑에 대한 단상(斷想) 전달에 치중한 작품이어서 내키는 대로 중간부터 읽어도 무방할 듯 싶다.
이씨는 “보통의 연애 서사가 시간이 필요하고 이야기가 있는 수직적인 성격이라면 이번 소설은 연애라는 사건의 단면을 잘랐을 때 보이는 현상에 대해 쓴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