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기원전 427~347)은 스승 소크라테스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잇는 서양철학의 뿌리다. “모든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주석”(앨프리드 화이트헤드)이라고 할 정도다. ‘국가론’은 그의 대표작이다. 어느 축제 날 저녁 아테네 항구에서 지인들과 대화하는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한다. 국가와 정의가 무엇인지,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설명하며 이상국가를 실현하려 노력하는 철인 정치를 주장한다. 그리스 세계의 최강국 아테네를 쇠퇴시킨 중우정치를 비판하기도 한다. 가족제도와 노인문제에 이르기까지 그가 다룬 소재와 주제는 방대하다. 이번 사태에서 플라톤이 서로 다른 맥락에서 세 갈래로 인용된 것도 이런 다채로움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만큼 단편적인 인용은 오독과 오해의 위험이 크다. 플라톤은 2400년 전 사람이다. 맥락을 무시하고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뀌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럼에도 플라톤의 문제의식만큼은 시간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 좋은 공동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이를 현실에서 이뤄내야 한다는 화두다. 그가 말한 좋은 공동체란 모든 구성원이 더 나은 삶을 살게끔 조직되고 운영되는 사회다. 세 갈래 플라톤 인용도 이런 기준으로 판단하면 될 듯하다. 특정인을 합리화하고 방어하기 위해 플라톤의 권위를 끌어들였는지, 공동체의 이익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차분히 쓰였는지를 살피면 된다. 어렵지 않은 정답을 찾아내면 누구나 21세기의 플라톤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