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진의 공부모임인 상춘포럼이란 게 있었다. 외부 인사를 초빙하여 강의를 듣는 이 모임에 나도 불려가서 건축에 대해 말하던 중 청와대에 대해 언급하게 되었는데, 진정성 없고 불순하기 짝이 없는 이 건축을 바꾸지 않으면 대통령의 말년이 불행해질 것이라고 했다. 모두 건성으로 듣는 듯했지만 내 말은 결국 사실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만 불행해진 게 아니었다. 국민들이 지지했던 이가 대통령이 된 후 모두 하나같이 나쁘게 되었다면 공통적 요인이 있을 게며, 그 중요한 혐의를 청와대라는 물리적 환경에 씌우는 게 억지일 수 없다.
대개 역사 속 독재자들은 건축에 집착한다. 건축을 통해 치적을 과시하려 했고, 독재의 정도가 심할수록 더했다. 히틀러가 대표적이다. 한때 건축가를 꿈꾸었던 그는 권좌를 잡자마자 건축을 통해 스스로를 신격화시킨다. 예컨대 1939년 4500명의 인원을 3교대로 동원하며 지은 총통관저는 복도 길이만 400m였다. 체코의 대통령이 무력으로 치닫는 독일에 담판을 지으려 왔다가 이 공간의 위력에 압박감을 느낀 나머지 심장쇼크를 일으켰다. 가까스로 회복된 그는 히틀러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만다.
대통령의 비극 끝내기 위해
이제 청와대 옮겨야 한다
그래야 북악의 푸르름이
광화문광장으로 이어지고
참된 민주시대 풍경 펼쳐져
봉건 상징물, 이제 깨끗이 가야
유신독재의 종말과 더불어 시들해지고 만 이 박조건축이 노태우 대통령 시절 대담하게 다시 등장한 게 지금의 청와대다. 청와대는 애초부터 장소가 불순했다. 일제가 조선왕조를 폄하하기 위해 경복궁이 내려다 보이는 북악의 기슭을 찾아 총독관저를 지은 곳이니 해방 후 이를 버려야 했지만 미 군정 장관이 관저로 쓰면서 못된 생명이 연장된다. 이승만 대통령이 속절없이 이를 받아 경무대라 칭하고, 윤보선 대통령은 미국의 화이트하우스를 흉내 낸 듯 블루하우스로 부르면서까지 청와대의 운명을 바꿔보려 했지만 대통령의 비극은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박조건축의 양식으로 탈바꿈하며 이 비극은 정점으로 치닫는다. 정통성에 자신이 없었을까, 조선왕조의 궁을 탐한 이 봉건적 건축의 내부 공간은 외부 크기를 유지하느라 허망하게 크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비서동과 멀어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건 여기서 거론도 하지 않겠다. 짝퉁이고 퇴행이며 가식이어서 진정성에 담쌓은 이 건축에, 아무리 선한 이도 몇 년을 거주하게 되면 허위가 되고 불통 되기 마련인데 본래가 가짜였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랬다.
대통령의 비극을 끝내기 위해 이제는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 많은 이도 수긍하는 지금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사실은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청와대는 그 건축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고 권력의 상징인 이 건축은 마치 대한민국의 머리처럼 서울의 공간구조 주축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단일 중심을 갖는 봉건 도시의 전형적 형태여서 알게 모르게 우리를 봉건의 굴레에 가둬 주눅 들게 한다. 생각해 보시라. 청와대가 없어지면 북악의 푸르름이 광화문광장으로 막힘 없이 이어져 가장 상징적이며 역사적인 중심공간을 자유롭게 거니는 시민들의 모습을…. 그게 참된 민주시대의 풍경 아닌가. 그래서 고하노니, 깨끗이 가거라 박조건축이여….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