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3월10일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서울시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해 탄핵 인용을 선고하고 있다. 같은 시간 촛불집회가 열리던 광화문광장 너머로 청와대가 보인다. 조문규 기자
▶1960년대 만 11세10개월에 대통령의 딸로 청와대에 간 박근혜.아버지 박정희ㆍ육영수 여사와 동생 근령ㆍ지만과 함께 찍은 사진
▶1974년 8월 15일 어머니 육영수 여사 서거.프랑스 유학 중 접한 비보에 “날카로운 칼이 심장 깊숙이 꽂힌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고 회고
▶1975년 2월18일 어머니를 대신해 1979년10월26일까지 1898일 동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영부인대행 자격으로 간 서울소년의집 개관식
▶1975년 9월2일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인연의 시작은 최태민.완장두른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최태민과 큰영애 박근혜양
▶1979년 6월10일 ‘1회 새마음제전’개회식에 참석한 박근혜 당시 새마음봉사단 총재.최순실은 잠시도 곁을 떠나지않았다
▶1979년10월26일 아버지마저 총탄에 잃은 만 27세의 그는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전방에는 이상없습니까?”라고 물었다
▶1979년 11월 21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9일장을 치른 뒤 박근혜는 두 동생 근령ㆍ지만과 쓸쓸히 청와대를 떠나야했다
▶1989년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주기. 이후 경험한 염량세태(炎凉世態)는 가슴 속 깊이 ‘배신의 트라우마’를 새기게했다
▶1998년 4월2일 4ㆍ2 대구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그는 세상으로 다시 나왔다.이후 제19대까지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2년 5월11일 3박4일간 북한 평양 방문,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박정희의 장녀와 김일성의 장남 사이에 이뤄진 역사적 회동.
▶2004년 3월24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역풍으로 침몰직전의 한나라당 새대표로서 첫 출근하던 날 당사 현판을 들고 천막당사로 갔다
▶2006년 5월20일 5ㆍ31지방선거를 앞두고 동분서주하던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는 서울 신촌에서 커터칼 테러를 당했다.첫 마디가 “대전은요?”
▶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의 제17대 대선후보경선에서 이명박에 석패.이후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한나라당 내 비주류계를 이끌었다
▶2010년 6월29일 이명박계 의원들이 재출한 세종시 수정안의 반대 토론자로 나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한다”
▶2012년4월10일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던 박근혜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명성답게 흰붕대 악수 투혼으로 19대 총선에서 승리했다
▶2012년 9월24일 새누리당 대선후보 자격으로 유신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과.이날 회견은 과거사 논란에서 탈출하는 전환점이 됐다
▶2012년 11월25일 국회의원 사퇴 기자회견에서 “15년동안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누어왔던‘대통령직’을 사퇴하겠다”
▶2012년 12월19일 제18대 대선에서 51.6%의 득표율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 48.0%보다 많은 과반수의 득표로 당선
▶2013년2월25일 33년만에 청와대 재입성.대한민국 최초의 여성ㆍ 과반 득표ㆍ이공계 출신ㆍ독신ㆍ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2014년 8월27일 박근혜정부 내내 비선실세들은 늘 그늘에 숨어있었다.뮤지컬‘원데이’관람 뒤 인사말하는 박 대통령을 지켜보는 차은택
▶2014년 12월7일 여당 지도부와의 점심회동에서 비선실세 국정농단의혹에 대해 “찌라시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
▶2016년10월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관련 첫 공식입장 발표.“어느 누구라도 엄정하게 처벌”
▶2016년 10월24일 국회시정연설에서 “임기내 개헌”.이에 야당은 “#그런데 비선실세들은?”이란 문구들고 연설 내내 시위
▶2016년 10월25일 결국 대국민 사과.“최순실,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연설문ㆍ홍보물 표현 도움받았다”하지만 국민 감정은 더욱 악화됐다
▶2016년 10월29일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자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이날 참자가는 3만여명
▶2016년 11월4일 이어진 대국민담화.“이러려고 대통령됐나 자괴감이 든다”“검찰조사ㆍ특검 수용” 지지율은 5%까지 떨어졌다
▶2016년 11월8일 돌파구를 찾던 그는 정국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았다.“국회서 총리 추천하면 수용하겠다”
▶2016년 11월20일 검찰,비선국정농단 중간수사결과 발표. 최순실ㆍ안종범ㆍ정호성 일괄기소와 함께 박 전 대통령도 피의자로 입건
▶2016년 12월1일 박영수 특검 임명장은 황교안 총리가 서울정부청사에서 수여했다.이날 박 전 대통령은 개인자격으로 대구서문시장 화재현장에 갔다
▶2016년 12월6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의혹사건 진상규명위한 국조특위 1차청문회’,경제총수 9명 출석
▶2016년 12월7일 2차 청문회에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출석.장시호는 지각 출석.‘공항장애’라는 최순실은 나오지 않았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가결돼 직무 정지.헌정사상 두번째 탄핵소추가 가결된 대통령이 됐다.“국민께 송구”
▶2016년 12월19일 최순실은 첫 재판에서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본인 소유 아니다.조작된 것.JTBC 태블릿PC 입수경위 밝혀라”
▶2017년 1월1일 박근혜에 대한 특검조사는 이뤄지지않고 있었다.청와대출입기자단 신년 인사회에 나와 탄핵소추 사유를 전면 부인했다.뇌물혐의 등에 대해 “완전히 나를 엮은 것”
▶2017년 1월20일‘블랙리스트 의혹’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은 영장실질심사 다음날 새벽 구속됐다
▶2017년 2월27일 황 권한대행,특검연장 불승인.박 전 대통령,헌재 탄핵심판최종변론 의견서 통해 “글로벌기업 부회장 구속…가슴 아팠다”
▶2017년 3월1일 서울 세종로에서 경찰차벽을 사이에 두고 탄핵반대 태극기집회는 남쪽,탄핵찬성 촛불집회는 북쪽에서 세겨루기를 했다
▶2017년 3월6일 특검 수사기간 종료(2월28일)6일만에 수사결과 발표.‘피고인 최순실은 대통령과 공모’…특검,수사보고서에 13번 반복
▶2017년3월10일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서울시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해 탄핵 인용을 선고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