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의 날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운명이 갈린다.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 대통령이 되거나 국회의 탄핵 소추에도 살아남는 두 번째 대통령이 된다. 중간지대의 결론은 없다.
헌재의 심리가 이뤄지는 동안 광장에선 수백만의 힘이 충돌해왔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한쪽에는 최선, 다른 한쪽에는 최악일 뿐이다. 탄핵 정국을 복기해 보면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고비가 있었다.
작년 10월 이후 탄핵 정국 돌아보니
문재인 맨처음 중립내각 요구했는데
김병준 총리 일방적 지명, 야당 반발
새누리 ‘4월 퇴진, 6월 대선’ 제의에
박 대통령 응답 없자 비박계 돌아서
야권인 민주당·국민의당 사이의 이견도 심했다. 지난달 말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 특검 연장을 거부하자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우리가 제안했던 ‘선 총리교체-후 탄핵’이 민주당의 반대로 불발된 게 특검 연장 실패로 이어졌다”고 주장한 배경이다.
박 대통령은 이틀 뒤인 지난해 11월 2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야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퇴진 선언을 하지 않고 국회에 공을 넘겼다는 이유로 질서 있는 퇴진론을 거둬들이고 촛불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점점 거세진 촛불시위 속에 야권은 탄핵소추안 발의 쪽으로 결집해 나갔다.
◆친박계의 ‘4월 퇴진-6월 대선’ 수용=광장의 촛불이 타오르자 친박근혜계에서도 ‘4월 퇴진-6월 조기 대선’을 받아들였다. 12월 1일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총에선 당론이 됐다. 그러나 이튿날 야 3당은 공식 거부했고 박 대통령도 퇴임을 약속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무성 의원 등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 쪽으로 돌아섰다. 박 대통령에게 쌓인 불신이 컸다. 결국 12월 9일 재적 300명 중 234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승복’이라 말하기 어려워했던 대선주자들=탄핵안이 헌재로 넘어간 후 정치권은 광장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문 전 대표는 “촛불집회에 개근했다”고 말했다. 그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고 말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자유한국당(새누리당 후신) 의원들은 태극기 집회에 올라탔다.
박상훈 정치발전소학교장은 “헌재의 결정 이후엔 촛불의 시간이 가고 정치의 시간이 온다”고 말한다. 탄핵 인용으로 박 대통령이 퇴진해 대선을 치르게 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탄핵 기각 또는 각하 결정으로 박 대통령이 자리를 보전하더라도 사실상 리더십을 잃은 데 따른 국가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촛불=명예혁명’이란 시각에 대해 “대통령이 실제로 탄핵을 통해 현직에서 평화적으로 물러나고 그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큰 갈등이나 대립이 발생하지 않을 때 명예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정애·정효식 기자 ockh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