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이글턴은 “악이란 이해 너머에 있는 것, 이해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악의 치열성이고 절대성이다. 악인들은 본인들이 악하다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다. 다시 이글턴을 인용하면 “악이란 자기 너머에 있는 어떤 것, 가령 대의(大義) 같은 것과 아무런 관련을 갖고 있지 않다.” 악은 악 그 자체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악인들은 자신들을 향한 모든 비난에 대해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당하게(?!), 진실하게(?!) 분개하는 것이다. 그들의 억울함과 분노는 가짜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악은 악 그 자체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비상식이 상식 덮을 때마다 민족 위태로워져
나치들은 소위 “민족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이념에 포획되어 ‘민족’과 ‘혁명’의 시뮬라크르에 충실했던 사람들이다. 알랭 바디유에 의하면 정치적 시뮬라크르는 “충성의 형식을 실제로 지니기 때문에… ‘어떤 자’에게 희생과 줄기찬 참여를 요구”하며 “전쟁과 학살을 그 내용으로 한다.” 말하자면 ‘명령’ ‘민족’ ‘혁명’ 이런 기표들이 형식(허상)으로서의 시뮬라크르라면, 전쟁과 학살은 그 내용(실상)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한 사회를 집단 광기로 몰고 가는 여러 가지 시뮬라크르들이 있다. 근대 국가의 형성과 발전의 과정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것들이 바로 ‘민족’ ‘애국’ ‘혁명’과 같은 시뮬라크르들이다. 이런 기표들은 대부분 ‘국가주의’의 기의(記意)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들을 ‘애국’의 이름으로 적대시한다. 대신 그것들은 그 안에 참여하는 개인들을 동질성의 확고한 틀로 묶어내며, 그것에 열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정의의 투사’라는 판타지를 갖게 만든다. 그들은 개인 단위에서 자신들이 겪은 비극들을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승화시키며, 헌신의 숭고미(崇高美)에 빠져 자신들을 역경과 고통으로 몰아넣은 구조적 악을 망각한다. 자신들이 지나온 불행의 역사를 조국을 위한 헌신으로 해석할 때,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숭고한 전사로 둔갑되는 것이다.
지금은 근대가 아니라 후기 근대 혹은 탈(脫)근대의 21세기이다. ‘상식’에 근거하여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가 “상상적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로서의 민족보다 더 중요한 시대이다. 상식이 존중될 때, 민족에 집착하지 않아도 민족은 아무 탈 없이 무사하다. 비상식이 상식을 덮을 때마다 민족이 위태로워지고, 그 틈에서 애국애민의 판타지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시스템이 가동되는 것이다.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