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최종 변론은 그저께, 특검 수사는 어제 종료되고 오늘은 98번째 맞는 삼일절이다. 기미 정신을 본받는다면 뭔가 종결되고 정리되고 매듭지어져야 하건만 98년 전과는 달리 갈가리 찢긴 상황이다. 가혹한 침탈 정치의 총칼에 맞서 맨몸으로, 태극기와 횃불로 저항했던 선조들 보기 부끄러운 날이다.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을 사이에 두고 두 세력의 증오와 적개심이 하늘 높이 분출된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불과 6개월 전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민족 대분열의 현장이 돼 버렸다.
국민의 대분열로 맞은 3·1절
정치권이 타개 국면 걷어차
촛불·태극기 양 진영 진정성
헌재 승복하는 의연함 기대
필자는 태극기의 진심을 믿는다. 땀을 쏟고 눈물 흘리며 지켜 오고 키워 온 나라다. 그런 이 나라가 좌경화되거나 자유민주주의가 핍박받고 완장 찬 이들이 설쳐대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엄동설한에 노구를 이끌고 나온 이들이 다수다. 박근혜보다 나라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애국심과 우국충정은 인정해 줘야 한다.
청와대를 둘러싸고 녹아내리는 촛농보다 더 간절하게 흘린 눈물의 촛불 행렬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에 의해 국정이 농단되고 권력이 사유화되는 데 대한 박탈감과 수치심, 분노를 느끼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자유민주주의 역사에서 이렇게 평화적이며 이처럼 대규모로 이토록 오랜 기간 촛불을 켜 들고 눈물로 호소한 적이 있던가.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성숙한 민주 시민으로 세계에 당당하다 할 것이다.
헌재의 결정이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찬반 입장은 팽팽해지고 대립은 첨예해질 것이다. 길은 하나다. 한쪽은 이기고 한쪽은 질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몰아갔다. 그릇된 정치가 승부를 열망했고, 분열을 조장했다. 국론은 갈릴 대로 갈리고 정치적 대립은 격화되었다. 한쪽은 승리하고 한쪽은 패배할 것이다. 그것이 지난 수십 년간의 한국 정치였다. 기득권은 철저히 지키면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화합·화해·통합·포용은 입술에만 있었고 마음에는 없었다. 지역과 계층, 세대와 교육 등으로 나뉘고 갈리기를 수없이 거듭해 왔던 한국 정치사의 마지막 변주곡이 이번 헌재 판결이다. 판결은 재판관의 법과 양심에 입각한 결과일 뿐이다. 수습은 정치의 몫이다.
수습은 뒷전인 채 승리의 가마만 타려는 이는 두 달 후 대통령이 될 수는 있겠지만 박근혜보다 더 불행한 대통령, 심하게 말하면 반쪽 대통령 역할도 제대로 못할 수 있다. 증오와 분열의 대가는 꽃가마 대신에 가시방석을 선사할 것이다. 승리한 쪽이 패배한 쪽의 찢긴 자존심과 애국심을 어루만지고 싸안을 수 있는 겸손과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 지도자가 되는 첫 조건이다.
화합과 포용, 자기희생과 양보의 길을 찾고 제시해야 한다. 이런 정치를 안 해왔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는 쉬운 일도 어렵게 해왔다. 마음을 비우고 내 편의 국민만큼 내 편 아닌 국민을 인정하면 된다. 대한민국만큼 선량하고 수준 높은 국민도 드물 것이다. 지도자 잘못 만나서 고생할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할 일이 남아 있다. 항상 머뭇거리는 듯한 모습으로 타이밍을 놓쳐 화근을 키웠다. 마지막 결단을 이번만큼은 더 늦지 않기를 그의 애국심에 마지막으로 호소한다.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