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대선의 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가 벌어질 줄 몰랐던 영화계는, 올해 라인업을 이미 오래전에 짜 두었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 대통령 선거일은 예정보다 훨씬 앞당겨지겠지만, 어쨌든 2017년이 대선의 해인 것에는 변화가 없을 듯하다. 돌아보면, 대선이 치러진 해에는 유독 실화 소재의 영화가 많았다. 바로 실존 인물이나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들 말이다. 18대 대선이 열린 2012년에도 그런 영화들이 있었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광해, 왕이 된 남자’(추창민 감독)를 비롯해, ‘26년’(조근현 감독) ‘남영동 1985’(정지영 감독) ‘돈 크라이 마미’(김용한 감독) ‘부러진 화살’(정지영 감독) 등이 개봉했다. 물론 그중에는 정치·사회적 사건의 재조명, 사법부 권위에 대한 도전 등 구체적 사안을 비판한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상징적인 지도자상을 비유적으로 극에 투영한 영화도 있었다.
지난 18대 대선 이후 만들어진 실화 소재 영화 중에는 애국심 코드를 녹인 전쟁 배경의 작품이 많았다. ‘연평해전’(2015, 김학순 감독) ‘인천상륙작전’(2016, 이재한 감독) 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분명 관(官)에서 만들지 않았는데도, 여러모로 관제영화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들 말이다. 반면, 그 반대 지점의 다큐멘터리도 주목할 만하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2015, 이상호·안해룡 감독)이 대표적인 예다. 외압을 무릅쓰고 2014년 이 영화를 상영했던 부산국제영화제는,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이 밖에 ‘자백’(2016, 최승호 감독) ‘7년:그들이 없는 언론’(1월 12일 개봉, 김진혁 감독)과 같은 다큐도 있다. 소문이 무성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현실로 확인된 지금, 영화인들은 그렇게 사회적 발언의 창구로 영화를 활용해 왔다.
2017년에 개봉할 영화를 살펴보면, 실화 소재 영화가 굉장히 많다. 이런 경우 소재 선택 과정에서부터 그 영화를 만들어 나갈 이들의 판단과 해석이 드러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변호인’(2013, 양우석 감독)의 감독·배우·제작자가 ‘누군가’에게 그토록 밉보인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올해 기대를 모으는 실화 소재 영화는 ‘군함도’(류승완 감독) ‘남한산성’(황동혁 감독) ‘대립군’(정윤철 감독)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등이다. ‘군함도’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하시마섬으로, 섬 모양이 군함을 닮아 ‘군함도’라 불린 이곳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400명의 고통과 아픔을 조명한다.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남한산성’은,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던 병자호란 시기를 다룬다. ‘대립군’은 임진왜란 당시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과 생계 유지를 위해 다른 사람의 군역을 대신하는 대립군에 대한 이야기다. ‘택시운전사’는 현대사를 소재로 삼았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눈에 비친 광주 모습을 담아낼 예정이다.
글=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