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로
고려대는 지난해 7월 ‘미래대학’ 출범을 예고했다. 하지만 5개월 뒤 염 총장은 미래대학 설립을 철회해야 했다. 학생 정원을 빼앗기는 기존 학과 교수들의 반대와 점거농성까지 벌인 학생들로 학내 갈등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 대학은 전공이 없는 대신 인문학·사회과학 등을 토대로 인공지능·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를 활용한 데이터 과학을 폭넓게 가르칠 계획이었다.
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 제안
의사·공무원 매달려선 미래 없어
대학, 첨단과학기술 창업 앞장서고
취업 못한 졸업생 재교육도 지원을
정부는 패자부활 안전망 만들어야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많은 국내 대학이 아직도 ‘2차 산업혁명’ 시대의 관습에 머물고 있다. 고교 시절 이과 최고의 학생들은 대개 의대에 간다. 교육부에 따르면 매년 2만 명 가까운 이공계 대학생들이 자퇴한다. 대부분 의학전문대학원 입학과 의대 편입을 준비한다. 대학은 각종 고시반까지 지원·운영하면서 학생들의 고시 열풍을 부추긴다. 융합의 추세와는 반대로 이공계와 인문대의 캠퍼스가 구분된 곳도 적지 않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분과위원들은 고급 두뇌들이 의사와 법조인, 공무원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중앙일보·JTBC 여론 수렴 사이트 ‘시민마이크(peoplemic.com)’에 올라온 의견도 일맥상통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창의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융합형 두뇌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뛰어난 인재들이 4차 산업혁명의 두뇌가 아닌 의사·판사·공무원에 뛰어드는 것은 사회적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고시 대신 창업을 선택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정부가 나서서 사회 안전망을 튼튼히 만들어야 (창업에) 믿고 뛰어들 수 있다” 등이 대표적이다.
실행과제1. 대학이 기업가 정신 고취해야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대학에 기업가 정신 고양과 창업을 위한 교과목·시설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은 물론 교수들도 창업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실행과제2. 대학이 패자부활전의 공간 돼야
김태유 교수는 “대학에 실직 또는 실패한 졸업생들을 위한 무상 재교육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모교가 졸업생들을 위한 패자부활전의 공간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에게 창업을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은 “개업과 창업은 구분해야 한다”며 “역량 있는 최고 엘리트들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창업에 나서야 부가가치 높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행과제3. 대표이사 연대보증 폐지해야
대학을 넘어서는 근본적 장애물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이석봉 대덕넷 대표는 “한번 실패하면 신용불량자로 떨어지는 현실 속에서는 아무리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창업에 나서길 꺼린다”며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대표이사 연대보증금지법이 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이 은행에서 대출받아도 대표이사는 무한정으로 연대 보증의 책임을 져야 한다. 전 세계에 한국만 남아 있는 악습이다.
실행과제4. 벤처엔 파격적 스톡옵션 지원을
스톡옵션 지원도 파격적으로 해야 뛰어난 인재들이 벤처 창업에 나설 수 있다(정희선 세종대 교수). 미국 스탠퍼드대의 인재들이 박봉에도 벤처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기업이 성공하면 스톡옵션 덕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과세특례가 적용되는 벤처기업 임직원의 스톡옵션 행사가액의 합계를 3년간 5억원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또 행사일로부터 1년 이내 처분하는 경우 소득세가 부과된다. 한국 벤처기업에 대박 사례가 없는 이유다.
최준호 기자, 이영민(이화여대 언론정보학4) 인턴기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