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학가 졸업식의 화두는 ‘위로’다. 역대 최고 청년실업률과 국정 농단 사건 등의 사회적 혼란이 대학가 졸업 시즌을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1월 청년실업률은 8.9%. 지난해보다 0.9%포인트 줄었지만 ‘취포자(취업포기자)’가 늘어난 탓으로 분석된다. 구직 단념자를 실업자로 계산한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2.5%로 집계를 시작한 2015년 이후 최고치다. 졸업식 축사가 ‘미래’ ‘도전’ 등 진취적인 단어 대신 위로의 말로 채워지는 이유다.
청년 실업에 국정농단 사태 겹쳐
아주대 총장과 학장단 노래 불러
성공회대는 경비원에게 축사 맡겨
“비겁한 지성 되지 말자” 다짐도
사회 혼란에 대한 사과와 반성도 축사에 자주 등장했다. 서강대 박종구 총장은 지난 14일 졸업식에서 “노령화와 학령인구 절벽시대, 그리고 정치 불안정과 예견된 경기침체가 청년실업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더 얹어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25일 고려대 학위수여식에 동문으로서 축사에 나선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금 우리 사회 혼란의 원인은 승자 독식과 이기주의”라고 밝혔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어지럽고 험한 세상일수록 우리는 사회를 돌보기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비겁한 지성들’이 주위에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배운 지식을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당화의 논리나 사익 추구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유라 특혜 파문으로 시끄러운 한 해를 보낸 이화여대는 지난해 10월 사퇴한 최경희 전 총장 대신 송덕수 총장 직무대행이 27일 학위수여식 연단에 선다. 송 직무대행은 앞서 24일 입학식에서 “최근에 큰 어려움들을 겪었지만 그동안의 역사를 가능하게 했던 이화의 정신으로 모두가 힘을 합해 극복하고 또 다른 도약의 계기로 삼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졸업식 축사를 하던 유명인사 대신 함께 얼굴을 맞댔던 학교 구성원 등이 소박하고 공감이 가는 인사말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성공회대는 지난 16일 졸업식 축사를 17년째 경비원으로 근무한 김창진(73)씨에게 맡겼다. 양복이 아니라, 평소 근무하는 모습 그대로 티셔츠에 초록색 조끼를 덧입은 김씨는 “이 어려운 때에 홀로서기 한 번만 해도 성공하는 것이다. 홀로서기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쌓아 올라가면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