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일런스’(28일 개봉)와 ‘핵소 고지’(22일 개봉)는 명감독과 가필드가 만났다는 것 외에 실화 소재로, 종교와 신념을 주제 삼은 것까지 일맥상통한다. 하나 두 감독이 영화를 다루는 방식은 전혀 딴판이다. 스코세이지의 ‘사일런스’가 장엄하고 묵직하다면, 깁슨의 ‘핵소 고지’는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다.
신작 영화로 돌아온 두 스타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의 ‘사일런스’
멜 깁슨 ‘핵소 고지’의 공통된 화두
실화 소재 … 묵직한 생각거리 던져
신자들이 고문ㆍ학살 당하는 참혹한 광경, 그는 간절히 기도하지만 신은 침묵한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한 인간의 종교적 신념이 뿌리째 흔들리는 이 소용돌이의 과정을 차분하면서도 집요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실화를 기반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이 원작이다. 갱스터영화로 명성을 쌓은 스코세이지 감독은 여러 차레 “내 최종 목표는 『침묵』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혀왔다.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그린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 이후 그는 ‘사일런스’를 기획해왔다. 약 30년 만에 꿈을 이룬 노장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묻고 싶었다”고 전했다. 2007년 『침묵』 영문판에 스코세이지는 “믿음이 의심을 낳고, 의심이 믿음을 풍성하게 한다. 의심에서 촉발된 외로움을 통해 영적 교감을 얻는, 그 고통스러운 역설의 길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는 서문을 남겼다. 이 찬사는 ‘사일런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핵소 고지’ - 불구덩이 속의 신념
‘사일런스’와 마찬가지로 ‘핵소 고지’의 도스 역시 내내 시험에 든다. 그는 집총을 거부해 휴가를 못 가고, 장교로부터 “적이 전우를 죽이면 어떻게 할 건데, 성경으로 적을 때릴 텐가?”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전장에 투입된 뒤엔 무기 없이 적에게 포위돼 최후를 맞는 악몽도 꾼다. 그저 총을 들면 그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나 우리에게 ‘네 어머니의 초상에 침을 뱉을 수 있느냐’, 혹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에게 ‘히틀러 만세!’를 외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테다.
‘핵소 고지’는 총성 너머 인간의 신념에 더 주목하는 전쟁영화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깁슨은 영웅을 전쟁터로 소환하기 앞서, 인간으로서 도스가 종교적 신념을 굳혀 가는 과정을 영화 절반을 할애해 보여준다. 고집불통이 아니라 불굴의 신념이 그날의 기적을 만든 셈이다.
‘핵소 고지’엔 감독으로서 깁슨의 모든 것이 집약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기와 신념에 대한 태도는 13세기 스코틀랜드 영웅을 다룬 ‘브레이브 하트’(1995)를, 집착에 가까운 사실적 묘사는 예수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 마야 원주민의 사투를 그린 ‘아포칼립토’(2006)를 연상케 한다. ‘핵소 고지’는 전쟁 스펙터클만큼 도스의 신념 어린 표정 역시 생생하게 포착한다. 이 영화로 연기 변신에 성공한 가필드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