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우면서 위험한 사람은 김정은일 것이다. 자신의 고모부를 처형한 데다 지금은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을 사주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100명 이상의 고위급을 죽였고, 군 장성의 계급장을 떼고 붙이는 것을 취미처럼 반복한다. 이런 자가 통치하는 북한은 핵실험을 다섯 번이나 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도 완성할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더욱이 핵 선제공격도 감행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언론은 마치 ‘광인’이 핵폭탄을 쥐고 흔드는 것처럼 김정은을 묘사하기도 한다.
고모부, 이복형 제거한
잔인함은 그의 선택
시장과 뇌물이라는
통제불가능 체제 생겨
공포로 충성 강제하는
북한 구조 냉철히 보자
잔인함은 그의 선택이다. 김정은은 잔인한 성격을 갖고 있을뿐더러 더 중요한 것은 이를 권력 유지에 합리적으로 이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아마 그 때문에 권좌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이른바 계산된 잔인함, 잔인한 합리성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가. 당연히 권력 유지다. 스탈린이 그랬다. 그는 소련 인구의 5% 이상을 죽이도록 명령했거나 죽게 만든 정책을 폈다. 1937~38년에는 70만 명의 일반인을 처형하기도 했다. 이 자체만 두고 본다면 ‘미친 짓’이지만 그에게는 권력 유지를 위해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였을 것이다. 스탈린에 대한 비밀 기록을 검토한 최근의 연구는 그도 권력 유지라는 관점에선 지극히 합리적인 독재자였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시장활동이 권력 유지에는 치명적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적 통제 수단은 배급제였다. 국가가 주는 배급은 북한 주민에게 충성을 요구할 설득력 있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주민의 식량 취득량에서 배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 3분의 2는 시장에서 구입하고 나머지는 텃밭 등에서 스스로 조달한다. 식량마저 국가가 보장해 주지 않고 내가 벌어 먹고살아야 함을 북한 주민이 체득한 것이다. 당연히 북한 주민의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심은 커지게 됐다.
정권의 통제력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관료가 받는 뇌물이다. 북한 가계는 지출 중 10%를 뇌물로 쓴다. 직접 시장활동을 하기 힘든 관료들은 시장에서 나오는 뇌물로 먹고산다. 그러다 보니 뇌물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된다. 시장이 돌아가야 양자 모두 먹고살 수 있는 구조, 김정은이 통제하기 어려운 ‘경제공동체’가 생긴 것이다. 김정은을 더욱 두렵게 만드는 것은 권력층 중에 무역과 시장을 통해 큰돈을 버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돈맛을 아는 이들마저 김정은에게 등을 돌리면 끝이다. 그는 이 절박한 상황에서 정권을 유지하려면 공포로 권력층과 관료의 충성을 강제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화폐개혁까지 감행하며 시장을 억압하려다 실패한 그의 아버지와 달리 그는 시장은 묵인하되 이보다 훨씬 더 큰 위력을 가진 ‘공포’를 조성해 시장의 위력을 제어하는 강대강(强對强) 전략을 쓰고 있다.
김정은은 전략적인데 우리는 단순하다면 북한 변화는 불가능하다. 진보나 보수 모두 나이브한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냉철한 시각으로 북한을 관통하는 구조를 봐야 한다. 대화 또는 안보라는 이분법을 넘어 그 구조를 파고드는 실사구시의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