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난 이지현 등 북한 국적자 4명은 베트남·인도네시아 여권 소지자 여성 2명이 지난 13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범행을 저지를 때 인근 식당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이 출국 나흘 후인 17일 평양에 도착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북한 배후설은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사실로 드러나는 북한 배후
용의자 4명 1월말부터 현지 들어와
여성 2명만 노출, 꼬리자르기인 듯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도
“동남아시아 여성 고용한 청부살인”
달아난 용의자 4명은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7일 사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레이시아로 들어왔다. 모두 지난 15일 출국 예정이었지만 김정남 암살이 완수되자 바로 출국했다. 경찰은 “이들 모두 외교관 여권이 아니라 일반 여권 소지자였다”면서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반해 이정철은 지난해 8월 말레이시아에 1년짜리 외국인 노동자 신분증(i-KAD)을 갖고 입국했다. 이정철이 북한 대학 졸업 후 인도에서 화학 전공으로 유학한 화학 전문가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누르 아시드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경찰청 부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여기 공장에서 일했다”는 사실만 확인해줬다.
현지 언론에 보도된 이정철의 화학 연구 경력이 맞다면 김정남을 사망케 한 액체 독극물 제조에 그가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지 언론은 암살단이 1년 동안 김정남의 동선을 파악했다고 전했는데 이정철이 쿠알라룸푸르 현지에서 근무하며 암살 계획 수립과 여성 조력자 포섭, 살해 약물 준비 등을 주도했을 수 있다. 다만 그가 범행 현장엔 없었고 사건 후 자신의 아파트에 남아 있다가 체포됐다는 점에서 사건 주범은 이미 출국한 4명일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김정남 암살 사건의 ‘북한 배후·책임’을 밝혀내는 수사는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말레이시아 경찰 측은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과 공조해 용의자를 쫓겠다”고 했지만 이들이 제3국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다면 사실상 체포가 불가능하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주범 격인 4명이 이미 평양에 입국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럴 경우 인터폴과의 협력도 별 소용이 없게 되고 이번 사건의 결정적인 물증을 찾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공식 발표에도 북한은 이날 아무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