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한·중 외교장관 회담의 언론 공개는 호스트인 중국 측 요청에 따라 여기서 끝났다. 취재진은 두 장관의 모두발언 취재는커녕 회담장 진입도 봉쇄됐다. 양국 간 긴장 관계가 반영된 조치로 읽혔다.
“사드 논란 후 각종 규제에 조치를”
틸러슨 미 국무장관 지원 속 압박
김정남 피살 관련 의견도 교환
중국도 北 석탄 수입 중단 밝혀
윤 장관은 “북핵 문제도 중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설명했다. 김정남 피살 사건과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회담 도중 윤 장관이 얘길 꺼내자 왕 부장도 간략히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담은 한국에겐 ‘설욕전’ 의미도 있었다. 지난해 7월 8일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의도적으로 외교적 결례를 범하며 한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연출해 왔다. 7월 24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을 때 왕 부장은 “한국이 신뢰의 기초를 훼손해 유감”이라며 한국을 비판하더니 윤 장관이 모두발언을 할 때도 턱을 괴고 듣다 고개를 젓거나 손사래를 치는 등 무례한 태도로 일관했다. 외교부 당국자들이 왕 부장을 ‘경극 배우’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맹비난했지만 정작 공식적으로는 변변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이를 의식한 듯 뮌헨안보회의를 계기로 열린 이번 회담 전부터 한국 측은 윤 장관의 표정과 바디 랭기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중국도 이날 회담 장소를 왕 부장의 숙소로 정하는 등 기선 제압을 시도했다. 회담 때도 왕 부장이 먼저 나타나지 않아 이미 호텔에 도착한 윤 장관이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한국에게도 보이지 않는 지원군이 있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었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 17일 독일 본에서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중국을 겨냥해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까지 꺼내드는 등 강경한 대북 경고 메시지를 냈다.
틸러슨 장관은 18일 왕 부장과의 회담에서도 북핵 문제로 중국을 압박했다. 미 국무부는 미·중 외교장관 회담 결과 보도자료에서 “틸러슨 장관은 중국에게 북한의 비행을 자제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all available tools)을 써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밝혔다. 현지 외교가에서는 “국무부 발표 내용에 이 정도 표현이 담긴 것은 실제 회담에선 더 센 발언이 나왔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의 이 같은 강경한 태도는 G20 외교장관 회의 내내 북한이 핫이슈로 떠오르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지난 17일 만찬 때도 윤 장관이 “북한은 규범에 입각한 국제질서를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룰 브레이커”라고 선도 발언을 하자 틸러슨 장관 등 참석자들이 적극 공감하고 나섰다. 북한에 대해 ‘노 임퓨니티(no impunity·책임을 명백히 물어 처벌함)’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데도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중국도 이런 한·미 공동 압박 전선을 의식한 듯 발빠르게 움직였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홈페이지 공고에서 “유엔 대북 제재 결의 이행을 위해 19일부터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할 예정”이라며 “이번 조치는 올해 12월 31일까지 효력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왕 부장도 기자들과 만나 “6자회담 재개의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며 북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의 강한 압박에 김정남 피살 사건 등이 겹치면서 중국도 나름의 액션을 취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뮌헨=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