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장기화하는 불황에 이 공식도 깨졌다. 요즘 미니스커트 대신 롱스커트, 하이힐 대신 굽이 낮은 로퍼, 레드 립스틱 대신 입술에 가까운 색인 MLBB(My Lip But Better) 립스틱이 잘 팔린다. 황지은 G마켓 트렌드 의류팀장은 “잠깐의 불황기에 기분 전환을 위해 했던 소비가 장기 불황으로 마치 불황이 일상화 되자 무의미해지며 되레 정반대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힐, 빨간 립스틱도 매출 저조
경기 부진 때 뜨는 3대 상품 변화
롱스커트, 로퍼, 색깔 옅은 립스틱
인터넷몰서 불황 속 판매량 급증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9년째 지속되고 있는 장기 불황에 이른바 ‘불황 아이템’에 싫증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불황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색다른 소비를 찾았지만 다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소비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황 팀장 은 “단기 불황에는 화려한 패션이나 화장으로 일시적인 기분전환을 할 수 있지만 이런 효과를 누리기엔 불황기가 너무 길어졌고 자연스레 이런 아이템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아름다운에 대한 인식 변화도 영향을 미친다. ‘섹시함’ 대신 ‘청순함’을 좇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긴 치마나 자연스러운 화장을 찾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진중열 서울패션디자이너협동조합 이사는 “TV를 틀면 짙은 화장에 짧은 치마를 입고 섹시함을 내세우는 10대 아이돌을 쉽게 접할 수 있다”며 “청순함이 오히려 색다르게 느껴지면서 패션 업계에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만족형 소비가 늘어난 것도 이유로 꼽힌다. 수입은 늘지 않고 주거비 증가 등으로 쓸 돈은 줄어들자 유행을 따르기보다 내 취향이나 개성을 담은 제품을 찾는다는 것이다.
최훈학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 마케팅팀장은 “여윳돈이 줄어들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어느때보다 부각되고 있고 이른바 ‘허튼 돈’은 쓰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최 팀장은 이어 “어쩌다 한번씩 쓰는 유행 상품에 대한 지출을 줄여 한번씩 고가의 상품이나 식당처럼 고급스러운 소비를 하려는 젊은층이 늘어난 것도 이유”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