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한의 황제 유비는 자신의 수석참모인 제갈량을 두고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음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고사성어를 유래한 이 말은 보스와 참모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물은 물고기 없이는 의미를 실현할 수 없듯이, 보스와 참모는 진정한 한 팀이 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 연재에선 한 팀을 이루는 바로 그 과정에 주목한다. 어떻게 보스를 선택하고 참모를 선택하는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역사 속의 사례로 살펴본다.
오래전 황금 승복을 입고 눈에 안대를 한 배우가 근엄한 목소리로 “나는 미륵이다”라며 카리스마를 뿜어냈던 사극이 있었다. 이 배우가 맡았던 역할은 궁예(弓裔, 생년미상~918), 신라왕의 버려진 아들로 후고구려(태봉, 마진)를 세운 인물이다. 미륵불을 자처한 궁예는 상대방의 마음속 생각마저 속속들이 알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위의 대화는 훗날 고려의 태조가 되는 왕건(王建, 877~943)과 나눈 것이다. 왕건이 반역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왕건으로서는 참으로 황당한 노릇이었을 것이다. 역모를 꾀한 적도 없을뿐더러 속으로 한 생각까지 읽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예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위 ‘관심법’을 시행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고 왕건은 당혹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궁예 옆에서 기록을 담당하고 있던 최응(崔凝)이 일부러 붓을 떨어뜨린다. 붓을 주우러 아래로 내려온 최응은 왕건의 곁을 스치듯 지나가며 속삭였다. “복종하지 않으면 위태롭습니다.” 순간, 왕건은 궁예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곧바로 “신이 진실로 반역을 도모하였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 모습을 본 궁예는 크게 웃으며 “경은 참으로 정직하도다. 다시는 나를 속이지 말라”며 상을 내렸다고 한다[고려사-태조총서].
궁예가 이러한 상황을 유도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당시 왕건은 신하들의 우두머리이자 군부의 수장으로서 조야로부터 두루 신망을 받고 있었다. 자칫 왕권을 위협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다른 마음을 품지 말라고 경고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관심법’이라는 것은 미륵불이 통치하는 신정(神政)국가를 내세운 궁예가 자신의 초월적인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왕건이 과연 이것을 인정하고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치는지 아닌지를 확인해보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왕건은 최응의 도움을 받아 이와 같은 궁예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무사히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궁예와 왕건이 갈라선 이유
이처럼 참모가 보스를 끌어내리는 비극으로 끝나긴 했지만 원래 궁예와 왕건의 사이는 매우 좋았다. 896년 왕건의 일가가 궁예에게 귀부한 이래 왕건은 궁예의 아낌없는 총애를 받는다. 스무 살의 나이에 태수가 되었고 눈부신 전공을 올리며 고속으로 승진했다. 왕건은 궁예의 군대를 이끌고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를 평정하였으며 육지와 바다 양면에서 호남 지역을 누비며 견훤의 후백제와 대결했다. 변방을 안정시키고 영토를 넓힐 전략을 보고해 조정의 주목을 받았고 궁예로부터 “나의 여러 장수 가운데 누가 왕건과 견줄 수 있겠는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리하여 913년, 왕건은 재상인 파진찬 겸 시중에까지 오르는데 이 무렵 궁예는 매서운 폭정을 휘두르고 있었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궁예가) 반역죄를 얽어 하루에도 100여 명을 죽이니 장수나 대신 가운데 해를 입은 자가 열에 여덟 아홉”이었고 보다 못한 왕후 강 씨가 이를 간언하자 신통력으로써 보았다며 간통죄를 뒤집어 씌워 죽였다. 이때 궁예는 보살이라는 칭호를 붙여 준 두 아들까지 참살한다(915).
왕건은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다. 궁예에게 간언하거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고려사]에 보면 왕건이 휘하 장수들에게 “지금 주상은 방자하고 포악하여 죄 없는 사람을 많이 죽이고, 참소와 아첨을 일삼는 무리들이 뜻을 얻어 서로 물들이고 있다. 때문에 내직에 있으면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우니 변방으로 나아가 정벌에 참여하여 힘을 다해 임금을 도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렇게 몸을 보전하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앙 정계에 있다가는 임금의 폭정과 간신들의 참소에 휘말려 헛되이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 국경을 방어하고 영토를 넓힌다는 명분으로 전장에 나와 있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왕건은 재상으로 있으면서도 “참소가 두려워 그 자리를 즐거워하지 않았고”, 여론의 지지와 인망이 자신을 향하자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변방으로 나가기를 자원”하였는데, 이 모두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좋은 참모 곁에 두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더욱이 왕건은 1인자가 되고 싶은 꿈과 그에 걸맞은 역량을 가진 부하였다. 이런 부하는 보스에게 양날의 검이 된다. 어느 누구보다 탁월한 참모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지만, 언제고 보스의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 보스가 이런 부하를 곁에 두기 위해서는 부하보다 더 크고 뛰어난 사람이 되는 길밖에 없다. 이런 부하를 보며 긴장하고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더 낫게 만들고자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궁예는 자신의 보스였던 양길을 축출한 바 있으면서도 이 교훈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자신 역시 왕건에게 축출당한 것이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