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세계의 맛 다 모였네…서울 속 작은 지구촌

중앙일보

입력 2017.02.03 00:09

수정 2017.02.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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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식료품 전문점
 


서울 이태원 우사단로의 이슬람 사원 언저리, 골목 한 곳을 쑥 밀고 들어가면 낯선 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히잡 쓴 여인, 물건 배달하는 동남아 청년, 바삐 걷는 흑인 남성을 보면 여기가 서울인지 인도인지, 아니면 중국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풍경이 뒤섞인 재미있는 골목이다. 골목 끝에는 이런 분위기를 압축해 놓은 이국적인 식자재 마트 ‘포린 푸드 마트(foreign food mart)’가 있다. 낯선 아랍어로 쓰여 있는 각종 향신료부터 곡류, 통조림, 치즈, 라면, 커피, 차, 과자, 그리고 할랄(이슬람교도인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 표시가 된 고기와 냉동식품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제품이 그득그득 쌓여 있다.

20대의 대부분을 인도와 중동, 아시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보냈다는 강민영(31)씨는 한 달에 두 어 번은 이곳에 들른다. 국제도시 서울엔 유럽이나 미국 제품 파는 곳은 꽤 많아도 여전히 인도와 파키스탄, 중동 지역 식재료를 파는 곳은 이곳이 거의 유일하단다. 강씨는 “인도의 명절 디왈리(10월부터 11월까지 열리는 힌두교 빛의 축제)시즌이 되면 여행 중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 꼭 들른다”고 말했다.

유럽의 여느 동네 마트를 닮은 한남동 하이스트리트 마켓엔 요즘 외국인 손님만큼이나 한국인 손님이 많다. 정겨운 매장 분위기가 좋은 데다 상주하는 이탈리아인 셰프가 만드는 홈메이드 스타일 빵과 잼, 샌드위치 덕분에 제법 인기를 끈다. 멀리 인천에서 가족과 함께 찾았다는 강주현씨는 “블로그를 보고 일부러 찾아왔다”며 “색다른 포장의 외국 식자재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원래 주 고객은 고향의 맛을 찾는 외국인들이다. 요리 강사 나카가와 히데코(中川秀子·50)는 연희동 ‘사러가 마트’의 오랜 단골이다. 1994년 한국에 와 어학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줄기차게 드나들었다. 그때만 해도 일반 마트에서 구하기 어려웠던 서양식, 일본식 식재료를 보며 향수를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희동에 터를 잡고 요리 선생이 된 후에는 거의 매일 장을 보러 이곳에 들른다. 나카가와는 “마음이 푸근해지는 공간”이라며 “가지 않는 날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일 가야하는, 그런 의미에서 화장실 같은 장소”라고 말했다.

필리핀관광청 한국지사 사무관인 릴리 리보사다(50)도 고향의 맛이 그리울 때면 매주 일요일 열리는 혜화동 성당 앞 필리핀 마켓을 찾는다.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새콤한 그린 망고를 소금에 찍어 먹으며 잠시나마 필리핀에 온 것 같은 안도감을 느낀다. 필리핀 마켓은 길거리의 작은 시장이지만 평범치 않은 풍경에 지나가는 한국인들도 이끌리듯 구경을 하고 지갑을 연다.

이렇게 외국 식료품점에는 특별한 공기가 흐른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은 익숙한 공기를, 반대로 한국인들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신선한 공기를 느낀다. 읽을 수 없는 낯선 문자가 찍힌 포장을 한 식재료를 보며 때론 지구 반대편의 낯선 곳을 떠올린다. 한 걸음 발을 들여 놓으면 작은 외국이 펼쳐지는 식료품점으로, 이번 주말에 짧은 여행을 다녀와 보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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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유지연 양보라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