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퇴임 이후 정치 행보는 우리 공동체의 발전을 희구해온 시민으로서 너무 당혹스럽다. 전쟁의 비극을 공부하며 평화를 위해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의 배출을 원망(遠望)하였던 학도로서도 난감한 마음 크다. 세계에서 국내 정치로의 역회귀는 끔찍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퇴임 이후 그의 정치 행보는
우리 공동체 발전을 희구해온
시민으로서 너무 당혹스럽다
가장 큰 걱정은 다음 세대다
청년들의 국제 고위직 진출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두렵다
그가 해당 직위에 선출될 때 한국은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 지표가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의 귀국연설에서 인권과 자유, 번영과 민주 발전을 이루고 자신을 천거·성원·지지해준 국민과 나라와 지도자에 대한 공적 예의는 찾기 어려웠다.
유엔 사무총장 배출 논의 시에 필자는 최후 분단 국가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 설립된 유엔의 최고 직위 배출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당시 국정책임자는 대화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내고 싶은 이유를 “보수는 진보를, 진보는 보수를 인정조차 하지 않는 불행한 상황에서 우리 시대에 진보와 보수 모두가 존경하는 사람 한 명은 만듭시다” “건국과 한국전쟁 시에 유엔에 졌던 빚을 좋은 사무총장을 배출하여 깔끔하게 갚읍시다” “어려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대한민국 대통령과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힘을 합하면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국내와 남북관계, 한국과 세계, 역사와 현재를 꿰뚫는 통찰이었다.
그러나 그의 재임 중 국제사회와 언론의 평가는 옮기기조차 민망했다. ‘최악의 사무총장’을 포함해 반복되는 세계 유수 언론의 평가는 자랑스러운 국격을 꿈꿔 온 필자로서는 민주화 이후 한국인으로서 가장 큰 수치심을 갖게 한 평판이었다. 특히 불행하게도 북핵 실험은 거의 전부 그의 유엔 사무총장 재임 중이었다. 북핵 문제는 유엔으로서는 한국 문제에 관한 한 사상 최악의 실패였다. 한국인 사무총장의 재임 중이라는 게 부끄러울 뿐이었다.
정치의 본질은 더욱 비관적이다. 10년 현장부재였던 그가 복잡한 한국 현실을 순식간에 파악하고 능숙히 대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그는 어떤 정당 기반과 정치 경험도 없다. 짧은 이합집산과 정치철새들을 통해 구축될 임시 조직으로 한 나라의 명운을 책임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무책임의 극치다.
정치는 고유의 능력과 지혜를 요구한다. 근대 최고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아예 인간의 모든 행위 중에 정치와 교육이 가장 어렵다고 언명한다. 둘 모두 ‘한 사회’ ‘한 인간’ 전체를 감당해야 하는 본질 때문이다. 한 분야의 성공이 결코 한 사회 전체를 감당할 수는 없다. 정치의 본질 때문이다. 최고로 성공한 경제인(정주영·박태준·문국현), 법률가(이회창), 관료(고건), 체육인(정몽준), 벤처 기업가(안철수)의 정치 도전은 실패했다. (후자가 성공한다면 선출직에 수차 도전한 ‘정치 경험’에 의한 것이다.) 외교관은 예외일까?
만약 반 전 총장이 퇴임 이후 국내 정치가 아닌 세계의 전쟁 방지·빈곤 퇴치·인권증진·환경 보호를 위해 헌신하려 했다면 국격과 자기 평판을 크게 높였을 것이다. 유엔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전란에서 구출되었음을 고려할 때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국제 헌신과 기여는 필수적이고도 값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역할도 가능할 것이다.
사실 반 전 총장의 최근 선택으로 인한 가장 큰 걱정은 다음 세대다. 그의 무능 평판, 국내 정치 활용, 규정 일탈 여부, 도덕성 논란으로 인해 다음 세대 청년들의 국제 고위직 진출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국제사회가 반기문의 행로와 한국청년들을 구별해주길 바랄 뿐이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평화를 희망했던 한 시민의 깊은 자기 반성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