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다시 없을 팀플레이...‘공조’ 현빈 & 유해진

중앙일보

입력 2017.01.27 00:01

수정 2017.01.29 13:54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척하면 착이다. 유해진이 포즈를 이끌면, 현빈이 이에 질세라 뒤따른다. “오~, 이 화보 말 된다. 남북한 형사가 손발 맞춰 공조했으니까, 포즈도 세트로!” 유해진의 추임새에 후렴구처럼 따라붙는 현빈의 미소. 말 없이 통하는 두 배우의 관계가 ‘공조’(1월 18일 개봉, 김성훈 감독)의 북한 형사 림철령(현빈)과 남한 형사 강진태(유해진)를 똑 닮았다. ‘공조’는 북한이 미국 달러 위조지폐 동판을 내부 변절자 차기성(김주혁) 일당에 도난당하면서 벌어지는 액션 활극. 차기성이 서울로 도주하자, 북한이 남한 정부에 도움을 청하면서 사상 최초 남북 공조 수사 작전이 펼쳐진다. 주어진 시간은 단 3일. 철령은 서울 파견 즉시 추격전에 몸을 던지고, 상부의 지시로 다른 꿍꿍이를 품은 진태는 철령과 엇박자를 낸다. 그러나 진태의 집에서 ‘합숙’하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버린 두 사람. 결국 남북, 아니, 서로를 위한 진짜 공조 수사에 나선다. 각각 혀를 내두를 만한 액션과 입담으로 이 영화를 ‘하드 캐리’한 현빈·유해진을 만났다.

사진=전소윤(STUDIO 706)

 
현빈(34)은 진중하다. 어떠한 질문에도 그의 말투는 부드러우면서 단호했으며 답변들은 묵직했다. “완벽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성격답게 말 한마디 한마디에 책임을 다하려는 듯했다. 사실 현빈은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2010~2011, SBS)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2012년 군 제대 후에는 아직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그와 만나기 전에 미리 넘겨짚은 것들이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 확실한 변신을 의도하지 않았을까. 흥행에 예민해 있겠지.’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 질문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현빈은 “지금껏 그래왔듯 캐릭터에 조금 변화를 줬을 뿐이고, 배우로서 정도(正道)를 지키며 최선을 다해 작품에 임했다”고 말했다. ‘공조’에서 시종일관 진지한 북한 형사 림철령이 되어 뛰고 구른 이유는 단 하나인 듯했다. 늘 새로운 ‘현재’를 만들고 싶은 현빈이기 때문에.
 
-철령은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와 다른 유형의 인물이다.
 “늘 모든 작품에서 조금씩 변화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철령은 기존에 연기한 캐릭터와 표현 방법부터 다르다. 지금까지는 말로 감정이나 상황을 표현했다면, 철령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캐릭터다. 과묵함 속에서 감정을 끌어내야 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유해진 선배님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유쾌하고 밝다. 감수성이 풍부한 배우이기도 하고(웃음). 무엇보다 후배로서, 동생으로서 배울 점이 참 많았다. 촬영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많이 하셨는데, 그 애드리브가 철저히 준비된 결과물이라는 걸 알게 됐다. 단 한 장면도 준비 없이 임하는 경우가 없으시더라.
-현빈-


-철령은 목숨 걸고 사건에 임하는 반면, 강진태는 성격이 느긋해 수사에 방해만 될 뿐이다.
“그 부분이 재미있었다. 남북한 형사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함께하다, 어느 순간 서로에게 힘이 되지 않나. 그렇게 의지하면서 결국 하나의 목표를 갖게 되는 것이다. 철령과 진태의 변화하는 감정이 좋았다.”
 
-극 중 철령의 대사는 대체로 단답형이다. 감정 변화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철령은 무언가를 말로 표현하는 친구가 아니다. 몇 마디 말과 행동으로 감정 변화를 보여 줘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그래서 김성훈 감독님과 철령의 감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철령은 사사건건 부딪치는 진태가 못마땅하지만, 그와 함께 지내면서 어느 순간 믿음이 생겼을 것이다. 진태의 집에서 지내며, 그의 식구들과 진짜 가족이 된 듯한 기분도 느꼈을 테고.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 자연스레 변화하는 철령의 감정을 오롯이 따라가려 했다.”
-‘공조’는 액션 연기도 중요하지만, 유해진과의 호흡이 정말 중요한 영화다.
 “촬영 현장에서 유해진 선배님을 많이 따랐다. 늘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분이라,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 기운을 받았다. 어느 날 회식이 끝난 후 유해진 선배님 집에 가서 한잔 더 하자고 말한 적도 있다. 그날 함께 와인을 마셨는데, 여행 이야기도 하고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때 나눈 이야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배우 생활을 하며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나 스스로 놀랐던 기억도 나고(웃음).”
 
-이 영화를 보니 ‘정말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액션신이 많더라.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준비했던 영화다. 워낙 위험한 장면이 많아 촬영 전부터 액션 팀과 철저하게 준비했다. 오랜 시간 충분히 합을 맞췄기 때문에 촬영 현장에서는 오히려 조금 여유가 있었다. 몸은 고됐어도 마음만은 행복했다.”
-카체이싱·와이어·격투·총격 등 모든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고.
“정말 위험한 장면은 직접 연기할 수 없었지만,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는 것만 확인되면 어떻게든 내가 하려 했다. 가끔 너무 위험해 보일 때는 유해진 선배님이 ‘미래를 생각하라’며 적극 말려 주셨다(웃음).”
-아무리 충분히 연습하고 훈련했어도 늘 사고 위험이 따랐을 텐데.
“액션 연기가 힘든 건,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얼굴과 급소로 향하는 동작이 많아서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가 일어나게 마련이니까. 가벼운 부상은 자주 있었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 심각한 사고 없이 무사히 촬영이 끝나 정말 다행이다.”
-10년 넘게 TV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동해 왔다. 현빈에게 촬영 현장은 어떤 곳인가.
 “촬영 현장에 가면 언제나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집과 다른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물론 가끔은 그곳에 가는 게 두려울 때도 있다. 일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과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거든.”
-‘완벽하게 일하고 싶다’는 뜻으로 들린다.
 “완벽주의자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부분이 많다. 가끔은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에게도 미안하다. 평소 ‘왜?’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거든. 연기는 명분과 타당성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 해야 해?’라고 물었을 때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대충대충 넘어가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 대중에게 고스란히 노출되는 일이니까.”
-행복한가.
 “늘 생각하는 질문이다. 직업적 특성상 항상 남들의 시선을 받으며 산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방금도 생각해 봤는데, 어제보다는 행복한 것 같다.”
-차기작은 철령과 전혀 다른 사기꾼 역할이다.
 ‘꾼’(장창원 김독)에서 사기꾼 잡는 사기꾼 역을 맡았다고. “‘꾼’도 ‘공조’처럼 편히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다. ‘현빈의 필모그래피가 점점 낯설어진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던데,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20대 때는 작품의 메시지가 중요했고, 여운이 긴 이야기를 선호했다. 지금은 두 시간 동안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요즘 세상이 이런저런 문제들로 복잡하지 않나. 극장에 앉아 있는 두 시간이나마 사람들이 즐거움과 위로를 느꼈으면 좋겠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공조’의 강진태는 범인을 쫓다가도 딸(박민하)에게서 전화가 오면 사족을 못 쓰는 ‘딸바보’다. 남북 공조 수사 협조라는 중대 임무를 제안받을 때도 그는 잠옷 바람으로 분리수거하고 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생활 연기로 배꼽 잡게 하는 건 유해진(47)의 장기 아니던가. 커피를 권하자 “막걸리가 좋다”고 능청스레 농을 치는 이 남자. 그런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색다른 면모를 발산한다. “에곤 쉴레(1890~1918) 그림의 본능적이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좋아해요. 예전에는 추상화도 종종 그렸는데….” 알수록 매력적인 배우, 유해진이다.
 
-화보 촬영할 때 보니, 의상 취향이 확고하더라.
 “말로 딱 설명하긴 힘든데, 선호하는 스타일은 있다. 이를테면 재킷은 짧은 게 좋다. 긴 코트를 입으면 왠지 초라해지는 기분이다. 뭔가에 갇힌 듯한 느낌이 싫어서 웬만하면 넥타이는 안 맨다.”
-‘공조’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진태는 어떤 옷이 어울리는 사람 같던가.
“처음엔 진태라기보다 ‘형사’란 직업에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막연히 고민했다. 그런데 촬영이 시작되기 전 카센터에 갔다가 우연히 형사 한 분을 만났다. 수사를 위해 CCTV를 확인하러 오셨는데, 흔히 입는 편한 점퍼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와, 유해진씨!’ 하면서 소탈하게 인사하던 그 모습을, 진태를 연기하는 내내 자주 떠올렸다.”
-진태가 옆집 아저씨처럼 넉살 좋고 느긋한 형사라면, 북한 형사 림철령은 살벌할 만큼 진지하게 수사에 목숨 건다.
 “‘공조’에 흥미를 느낀 이유다. 남북 형사가 (서로 의심하느라) 공조 아닌 공조를 하다 진정한 공조 수사에 이르는 흐름이 신선했다. 어찌 됐건 한 핏줄이잖나. 이념을 넘어 사람 대 사람의 휴먼 드라마를 그린 점이 좋았다.”
 

현빈은 욕심부릴 줄 아는 배우다. ‘공조’에 대규모
액션신이 많잖나. 액션 연기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
웬만한 촬영은 직접 해내려고 하더라.
너무 위험한 장면들은 내가 말렸을 정도다.
육체에 피로도가 쌓이면 나이 들어서 힘드니까.
적게 탈 나고, 오래 연기하자고 말이다.
-유해진-



 
-현빈과는 이 영화로 처음 함께했다. 극 중 철령 못지않게 과묵한 배우라, 가까워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진 않았나.
 “촬영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술자리가 있었다. 진하게 마셨는데, 빈이가 우리 집에서 한잔 더하자고 했다. 아직 서로 어색할 때였거든. (현빈) 매니저도 그런 모습은 처음이라며 놀라더라. 그날 둘이 술을 무진장 먹었다. 이튿날 근처 식당에서 찌개로 해장하는데, 밥을 되게 잘 먹더라(웃음). 내게 먼저 다가와 줘서, 촬영 초반부터 수월하게 호흡을 맞췄다. 가끔 우스갯소리도 하는데, 나만큼 썰렁하다. 껄껄껄.”

-진태는 형사로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조차 아내(장영남)와 딸, 처제(임윤아)에게 둘러싸여 있다. 철령이 그의 집에 묵으면서, 진태 가족의 평범한 일상과 남북한 형사의 심각한 공조 수사가 맞물리는 상황들이 재미있더라.
 “진태처럼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살았으면 내 생활이었을 모습이다. 전작 ‘극비수사’(2015, 곽경택 감독)도 그렇고, 아빠 역이 슬슬 들어온다. 작품마다 극 중 내 아이가 한두 살씩 자라는 게 느껴진다. 나이가 드니까 나 역시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약간 더 깊어지더라.”
-‘공조’는 가족 캐스팅부터 각별했다고.
 “딸내미로 나온 (박)민하는 ‘감기’(2013, 김성수 감독)도 같이했던 아역 배우다. 아내 역의 장영남은 극단 목화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다. 알고 지낸 지 20년도 넘었나. 워낙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고 잘한다. 몇 년 전 그 친구가 출연한 극단 골목길의 연극을 보러 갔는데, 와, 진짜 (배우로서 부러워) 죽는 줄 알았다. 어떻게 저런 감정들을 잡아내는지. 그런데도 자신의 연기를 의심하기에 나중에는 싹 성질이 나서 ‘본인이 잘하는 걸 알면서, 그만 좀 하라’고 핀잔줬다. 껄껄. ‘극비수사’에도 같이 출연했잖나. 함께 연기하면서 진짜 집사람처럼 편했다.”
-극 중 “(진태의 매력이) 치명적”이라는 아내의 대사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졌다.

“아이고, 웃자고 넣은 대사지(웃음). 생활 속 디테일한 애드리브도 다양하게 짰다. 다 같이 정말 재밌게 찍어서, 극 중에서 가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의 감정도 자연스럽게 올라왔다.”
-‘공조’ 촬영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울산대교에서 찍은 클라이맥스 액션신. 감정적으로나 볼거리나, 이 영화가 가진 많은 부분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철령과 진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도 그렇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뻐근함’이라 해야 할까. 남북한이 처한 어쩔 수 없는 현실과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정이 맞물린 그 이상한 감정들….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다.”
 
스크린에 데뷔한 지 올해로 20주년이다. ‘뻐근함’을 느끼게 해 준 좋은 인연이 많았나.
 “그런 것들을 고민하게 되는 나이인 것 같다. 누가 내 곁에 있어 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를 요즘도 만나는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살아가는 게 참 쉽지 않음을 매번 느낀다. 이제 다들 퇴직에 대해서도 생각할 나이고.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싶다. 오래가는 배우들은 한정돼 있잖나. 창피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 연기하고 싶다. 그게 내 희망이다. 자기 자리에서 내 몫을 다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지금 대한민국의 시국도 그러지 못해서 생긴 문제니까.”
 
-매년 다작을 하다가, 지난해에는 주연작 ‘럭키’(이계벽 감독) 한 편으로 진짜 ‘럭키한’ 흥행(관객 697만 명 돌파)을 거뒀다. 올해는 ‘공조’에 이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택시운전사 역으로 출연한 ‘택시운전사’(장훈 감독)가 개봉할 예정인데.
“지난해에는 연초에 좋은 꿈을 꿨다. 그 덕분인지, 기대하지 못한 고마운 일들이 있었다. 올해도 그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신나게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요즘은 가공식품 같은 영화가 많다. 샐러드처럼 아삭아삭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느끼하지 않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