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장 역을 맡은 안인상(57)씨는 15분여의 교대식 동안 위엄있는 표정으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실제 조선시대의 장군처럼 위엄있는 모습에 교대식이 끝나면 관광객들의 기념촬영 요청이 몰린다. 10여 차례의 기념촬영을 마친 다음에야 그는 긴장감 섞인 표정을 풀었다.
‘덕수궁 수문장’ 안인상씨
늘 무대 목마른 연극배우로 30년
3년 전 교대식 참가하며 본업으로
“일본 관광객 팬들과 식사도 했죠”
안씨는 79년 안양예고를 졸업하고 연극계에 입문했다. 거리의 벽과 전봇대에 연극 포스터를 붙이는 ‘풀팅(풀+포스팅)’ 같은 허드렛일로 시작해 창작극 ‘불가불가’ ‘카덴자’에 출연했다. 고전 ‘햄릿’ 등의 무대에도 올랐다. 연극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서른한 살이 되던 해 결혼을 하면서 연극인의 꿈보다 생계를 먼저 챙겨야 했다. 막일은 물론 용접공과 크레인 기사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래도 연극은 그의 꿈이었다. 안씨는 “공사 일을 하다가도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작품 연습을 했다. 90년대 초 연습·공연 기간 합쳐서 3개월씩 걸리는 작품 하나에 150만원을 받았는데, 그게 공사판 한 달치 월급밖에 안 됐다. 그래도 연극할 때가 가장 좋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넘어서자 출연 제의는 점점 줄었다. 연극을 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일’을 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러던 중 연극계 선배가 수문장 교대식 참가를 제안했다.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연기에 목말랐던 그에게 교대식도 연극의 일부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안씨는 “행사 때만큼은 ‘내가 조선의 수문장’이다. 대한문 앞이 내 무대고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내 관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수년째 교대식 행사를 찾아 ‘수문장 체험’을 하는 일본 관광객과 저녁식사 자리를 할 만큼 팬도 생겼다.
대한문은 그의 연극 인생을 이어준 감사하면서도 힘든 무대다. 요즘처럼 추울 때는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한여름 삼복더위에는 땡볕이 그를 비롯한 ‘조선군’들을 괴롭힌다. 그는 “삼복더위에도 3겹짜리 조선시대 군복을 입고 행사를 해야 한다. 매번 군복이 땀으로 젖는다. 하루 세 차례 이 옷을 벗고 입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 참가자들이 모두 계약직이란 점도 불안 요인이다. 매년 계약을 갱신하면서 월급 150만원을 받는다. 안씨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자부심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 얘기를 하면서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못난 놈 만나 고생한 아내와 두 아이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가족을 지키는 마음으로 수문장 역할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글=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