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지사 안희정의 대권 출사표를 보며 샌더스를 떠올렸다. 그는 야당의 잠룡 중 유일하게 오른쪽으로 크게 한발을 디뎠다. 재벌 개혁을 말했지만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불구속은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고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엔 반대하지만 한·미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한다고 말했다. 경제는 노태우부터 6명의 대통령, 30년의 축적을 이어받으면 된다고 했다. 노태우의 토지공개념, 김영삼의 세계화, 김대중의 정보기술 육성, 노무현의 혁신경제, 이명박의 녹색성장, 박근혜의 창조경제로 충분하다고 했다. 30년 대통령 경제학을 뭉뚱그려 안희정은 ①개방과 통상을 통한 ②혁신 주도형 ③공정한 민주주의 시장경제로 녹여냈다. 각론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새누리당까지 좌클릭 포퓰리즘에 빠져 있는 대선판에서 “국민은 공짜를 원하지 않는다”는 그의 목소리는 신선하다. 그는 이를테면 부정 대신 긍정, 분열 대신 통합, 단절 대신 계승, 공짜 대신 공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이 오늘 대한민국 정치인의 언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정·분열·단절·공짜 대신
긍정·통합·계승·공정 말해
이런 정치공학의 분석이 다 맞는다 해도 나는 안희정의 정치 언어를 지지한다. 진영을 가르고 패를 나누는 건 정치가 할 일이 아니다. 문재인은 노무현 정신 계승을 말하며 노무현 따라쟁이의 길을 걷고 있다. “탄핵 실패 땐 혁명” “친일·독재, 적폐 청산”을 외친다. 거친 그의 언어는 노무현의 나쁜 유산, 편 가르기를 답습하고 있다. 대통령이 될 수는 있겠지만 되고 나면 100% 실패할 것이다. 광화문이 1년 뒤엔 문재인을 끌어내리려는 태극기와 이를 막으려는 촛불로 뒤덮이지 않는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나. 그렇게 되는 순간 대한민국에 더 이상 미래는 없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위험의 징조도 있다. 21일 광화문 13차 촛불집회는 진영의 막장을 보여줬다. 광장 한복판에 박근혜 대통령의 나체 성행위 그림 걸개가 걸렸다. 저질스럽기가 표창원이 국회에 걸도록 한 그림은 저리 가라다. 최순실의 박근혜만큼, 나는 그 포르노그래피가 수치스러웠다. 문재인이 촛불을 이끌고 도착하려 했던 종착역이 바로 여기인가. 한 번 폭주한 광장의 힘은 사람과 진영을 가리지 않고 물어뜯을 것이다. 문재인도 예외일 수 없다.
두 달 뒤(탄핵 결과 발표), 또는 넉 달 뒤(대통령선거) 대한민국이 완전히 둘로 쪼개지지 않으려면 화합의 정치, 포용의 경제를 말해야 한다. 그 희망의 싹을 나는 안희정의 문법에서 읽었다. 그러므로 나는 안희정이 문재인의 샌더스로 끝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