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선영의 노벨상 이야기

[김선영의 노벨상 이야기] 노벨상, 우리도 받을 수 있다 - 문제는 돈이 아니다 -

중앙일보

입력 2017.01.24 01:26

수정 2017.01.24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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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노벨상 수상이 나라 발전의 지표로 사용되다 보니 우리 국민들은 이를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생각한다. 이 칼럼을 통해 우리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비용 대비 가장 좋은 방법은 젊은 과학인들에게 투자하는 것이라 주장해 왔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황을 양어장과 비교해 보자. 아무리 좋은 물고기를 풀어놓아도 수질이 나쁘면 물고기는 쉽게 죽는다. 양어장 관리인은 이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물고기 즉 인재를 선발해 돈을 투자해도, 그가 소속된 기관의 환경 즉 물이 안 좋으면 세계적 성과가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양어장 관리인에 해당하는 대학 총장 혹은 연구소 소장, 그리고 예산과 인사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무원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연구개발(R&D) 투자 효율성은 매우 낮다. 2014년 기준 우리 정부와 기업이 R&D에 투자한 돈은 약 110조원으로 이는 세계 5위 규모이고, GDP 대비로는 세계 1위다. 그런데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R&D 예산의 7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이스라엘과 스위스는 과학 분야에서 6개의 노벨상을 받았다. 인구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명확히 우리가 돈을 잘못 쓰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우리 현실은 암울하다. 기초과학과 도전적 연구의 선봉인 대학은 전근대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해관계가 다양한 대학교에서 총장을 선거로 뽑으니 비전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 기관장이 되기 어렵다. 신임 교수 선발에 파벌 싸움이 횡행하고, 수많은 분야에 걸쳐 교수를 뽑으니 연구자 간에 장비나 시설을 공유하지 못한다.

정부 지원으로 중장기 연구가 가능한 출연연구원의 사정도 답답하다. 원장 임기가 3년인데, 원장 선임과 예산배분에 열쇠를 쥔 공무원은 대통령과 언론에 보여줄 단기 성과와 자극적인 신사업을 요구한다. 중장기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 며칠 후 1조원짜리 AI 사업을 만든 것이 좋은 예다. 국회와 언론은 소수의 잘못을 한 건 터뜨리기식으로 발표하고, 1%의 부정을 막기 위해 만들어지는 각종 규제로 인한 자원 손실도 만만치 않다.


이제 돈은 충분하다. 우리가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는 정부와 과학기술계의 리더십 부재로 인해 나라의 R&D 환경이 아직도 1.0 버전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정부는 견지망월의 우(愚)를 벗어나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실천을 통해 노벨상 수상의 기초를 쌓기 바란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