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내린 도시가스가 70% 오른 배추보다 가중치 크기 때문이죠"
A. 틴틴 여러분.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어머님 말씀과 기사 모두 맞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를 알려면 우선 물가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물가는 한자로 ‘사물 물(物)’과 ‘값 가(價)’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물건의 값’인 거죠. 그런데 정부가 말하는 물가는 단순히 물건값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과 서비스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죠. 정부는 국민을 대신해 이들 상품의 가격을 조사합니다. 모든 상품을 조사하진 않습니다. 시장에서 주로 거래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고릅니다. 그리곤 이를 하나의 단위로 묶은 뒤 별도의 공식으로 평균을 내 숫자로 표시합니다. 가격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오르고 내렸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지요. 이를 ‘물가지수’라고 부릅니다. 흔히 정부와 언론에서 말하는 물가는 이것입니다. 틴틴 여러분이 기사에서 본 소비자물가도 여기에 속하죠. 정확히 말하면 소비자물가지수입니다. 틴틴 여러분과 어머님 같은 소비자가 평소에 많이 사는 상품을 조사해 계산한 숫자입니다.
생활밀접한 460개 품목 골라 조사
통계청이 물가 변동 계산, 매달 발표
채소·과일 등 식료품은 가중치 낮아
소비자물가지수와 체감물가 차이나
경제정책 방향 좌우할 소비자물가
정부도 대표 품목·가중치 조정 나서
틴틴 여러분이 가진 의문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체감물가는 많이 올랐는데 정부의 공식 물가는 그 정도로 상승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요. 소비자의 체감물가가 잘못된 걸까요. 아니면 통계청이 물가지수를 잘못 계산한 걸까요.
둘 다 아닙니다. 바로 ‘가중치’라는 존재 때문이에요. 통계청은 물가지수를 계산할 때 품목별로 가중치를 달리 적용합니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되는 품목에 높은 가중치를, 영향이 크지 않다고 생각되는 품목에는 낮은 가중치를 적용해 소비자물가지수를 계산합니다. 전체 가중치는 1000으로 놓고 계산합니다.
460개 품목 중 가중치가 가장 높은 건 집을 구하는 데 쓰는 비용입니다. 전세(49.6)와 월세(43.6) 가중치가 1, 2위입니다. 소비자물가지수 계산에서 전·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10% 가까이 되는 것이죠. 앞서 언급한 휴대전화 요금이 3위입니다. 이외에도 휘발유 가격(25.1), 전기요금(18.9) 등에 높은 가중치가 매겨집니다. 반면 시장에서 직접 살 수 있는 식료품목의 가중치는 낮습니다. 지난해 가격이 많이 오른 배추와 무의 가중치는 각각 1.2와 0.6에 불과합니다. 물가지수 산정 과정에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0.12%와 0.06%에 그친다는 뜻이죠. 땅콩·밀가루·식초·이유식 등도 가중치가 0.1 수준입니다. 월세의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0.4%에 그쳤습니다. 휴대전화 요금은 0%였습니다. 가중치가 25.1인 휘발유는 -7%를 기록했습니다. 결국 계란과 무 등 장바구니 물품 가격이 아무리 많이 올라도 가중치 높은 상품의 가격이 오르지 않으니 전체 물가지수엔 큰 변화가 없는 겁니다.
그럼에도 소비자물가지수는 여전히 시장 변화를 바로 반영하지 못합니다. 정기 조정이 5년에 한 번씩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문제점이 제기되자 정부는 지난 19일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를 올해 추가 조정하기로 했습니다.
체감물가와 공식물가와의 차이를 줄이는 건 한국경제의 방향을 결정하는데도 중요합니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만 보면 최근 3~4년은 ‘저물가’ 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보통 수요 부족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우려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상품의 물가가 오르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부로선 경기 침체를 탈출하기 위해 수요 확대 정책을 펴야하는지, 아니면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 정책을 펴야 할지 헷갈릴 것입니다. 만일 경제 상황을 잘못 해석해 정부가 그릇된 정책을 쓴다면 한국 경제는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죠.
세종=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