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킨스의 진화생물학은
병아리의 쪼기 행동 관찰로 박사 논문
이처럼 동물행동학은 기본적으로, 동물의 행동이 진화론적으로 유리한 특징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렇기에 동물행동학은 그 방법론 자체에서 인간과 동물의 행동에 대한 설명에서 차이를 두지 않는 ‘통섭적’ 특징을 보인다. 이런 방법론적 가정은 사회과학의 근본 전제와 분명한 대립각을 세운다. 사회과학의 출발점은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자신이 생각하는 특정한 ‘이유’에서 행동을 하는 주체적 존재라는 것인데, 인간 행동의 양상이 동물과 마찬가지로 진화론적으로 유리한 특징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부분적으로라도) 결정되어 있다면 이를 ‘주체적 인간’의 관점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지는 쉽지 않은 문제가 된다. 유명한 ‘본성-양육’ 논쟁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생존 위해 만들어진 유전자 ‘긴 팔’
포크레인·우물·댐으로 확장해 설명
이슬람·기독교의 인격화된 신 부정
과학이 도덕사회 만들 수 있다 주장
유전자의 ‘긴 팔’과 문화의 응축 ‘밈’
도킨스는 『확장된 표현형』에서 비버의 댐(비버는 댐을 만드는 습성을 갖고 있다)을 비롯한 다양한 사례를 들어 유전자의 ‘긴 팔’을 설명한다. 유전자의 ‘긴 팔’이란 또 다른 은유다. 우리가 물을 마시고 싶어 팔을 뻗어 물컵을 잡는다면 팔은 우리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물을 안정적으로 얻기 위해 포크레인을 동원해 우물을 판다면 포크레인이나 우물도 의지 실현을 위해 몸을 확장한 일종의 ‘긴 팔’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표현형이란 ‘파란 눈’처럼 원래 유전자의 결과물로 나타난 생명체의 특징(형질)을 의미한다. 그런데 동물의 행동을 ‘이기적’ 유전자의 결과로 볼 수 있다면 동물의 행동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 예를 들어 비버의 댐도 일종의 유전자의 ‘긴 팔’의 결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자에 의해 직접적으로 만들어지는 단백질만이 아니라 동물의 행동과 그 결과물 또한 ‘확장된’ 표현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 ‘확장된 표현형’의 개념으로 인간의 문화적 생산물을 모두 포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실상부 유전자의 ‘긴 팔’이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만이 아니라 문화적·사회적 특징에까지도 뻗어 있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확장된 표현형’에서 더 나아가 본격적으로 인간의 행동과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밈 개념을 도입한다. 밈은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 사이에 전달되는 생각·행동·스타일’을 지칭한다. 즉, 유전자와 유사하게 (하지만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사람들 사이에서 전파되는 문화적 단위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밈은 유행어나 대중가요의 곡조겠지만 좀 추상적으로는 정치적·종교적 원리나 철학적 주장도 해당된다.
도킨스의 밈 개념이 가장 논쟁적으로 활용된 예가 종교다. 도킨스가 보기에 종교적 믿음, 특히 ‘신’ 개념은 가장 나쁜 종류의 밈이다. 도킨스는 아인슈타인의 신 개념처럼 온 우주에 퍼져있는 추상적 원리의 은유로서의 신 개념에는 별 불만이 없다. 도킨스가 문제 삼는 것은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인격신 개념이다. 그는 이런 인격신이 진정으로 존재하는지를 과학적 가설로 간주해서 경험적 판정을 내리자면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처럼 부정적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이렇게 분명한 결론이 났음에도 종교적 믿음과 신 개념이 이토록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킨스는 이에 대한 설명을 밈이 전파되는 과정에 대한 자신의 이론에서 찾는다. 종교를 가진 부모 밑에서, 혹은 종교가 사회 전체에서 널리 수용되는 환경에서 자라난 어린이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 밈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도킨스 역시 종교가 우리의 삶에 도덕적·교육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런 기여가 종교가 아닌 과학을 통해서 더 잘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생각이 종교적 근본주의자만이 아니라 상당히 온건한 방식으로 종교와 과학의 공존을 모색하려는 사람들도 불편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도킨스의 ‘전투적 무신론’은 과학지식의 긍정적 힘을 확신하는 21세기의 신계몽주의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책은 과학자에게도 훌륭한 교양서
이상욱(한양대 철학과 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