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공백은 노희경 작가를 만나면서 끝났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SBS) ‘괜찮아 사랑이야’(2014, SBS) ‘디어 마이 프렌즈’(2016, tvN) 등 노희경 작가의 TV 드라마에 줄줄이 출연하며 여전한 스타성을 입증한 것. 그리고 이제 ‘더 킹’을 선보일 차례다. “영화와 TV 드라마를 구분하는 게 더 이상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게 중요한 건 두 가지다. 첫째, 좋아하는 연기를 계속하는 것. 둘째, 좋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 그때그때 주어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선택하면 된다.” 조인성의 말이다.
[커버스토리] '더 킹' 조인성·정우성·배성우·류준열
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빤히 내보이는 인물이다.
이 영화는 그 솔직함을 무기 삼아, 태수의 욕망이 얼마만큼 커지는지 극 후반까지 짜릿하게 속도를 올리며 쫓아간다. 조인성은 그 모든 이야기를 “선택의 드라마”라 설명한다. “내 가족을 위하고 지금의 처지보다 좋은 상황으로 가려는 욕망은, 우리 모두 느끼는 바 아닌가. 현재의 태수를 만든 무수한 선택들 역시 그 처음을 돌이켜 보면, ‘이 세상의 왕이 되겠다’는 거창한 욕심보다 모두가 공감할 만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느꼈다.”
‘더 킹’은 바로 그 점을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태수와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의 당신을 만든 것은 어떤 선택인가. 그리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연기를 시작한 건, 솔직히 말해 ‘스타가 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유명해지고 싶었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좋았고, 인기를 얻고 싶었다. 그런데 이 바닥에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타가 아니라 배우가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TV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2004, SBS)의 방황하는 ‘금수저’ 정재민을 연기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남들에게 ‘연기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노희경 작가의 TV 드라마는 그런 조인성이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게 만든 계기였다. “연기란 것이 산 넘어 산이더라. 이제 문턱 하나를 넘었나 싶으면, 연기를 귀신같이 잘하는 배우가 새로 등장한다. 그들의 연기를 보며 ‘저걸 어떻게 했지?’ 감탄하곤 한다. 그래서 요즘은 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더더욱 어깨가 무거워진다. ‘이 작품을 멋지게 해내고 싶다’는 중압감에 스스로를 다잡을 때가 많다.”
지금까지 배우 조인성을 대표하는 얼굴은, 범죄·누아르영화 ‘비열한 거리’(2006, 유하 감독)의 삼류 건달 병두일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숨을 헐떡이며 쓰러지는 젊은 남자, 그의 눈에 어른거리는 뜨거운 비애. 그것이 젊은 남자가 성홍열을 앓는 듯한 모습이었다면, ‘더 킹’은 조인성의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이미지를 심는 대표작이 될 것이다.
그 이미지를 대표할 얼굴이 무엇인지는,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 주는 태수의 다양한 모습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된다. 연기만이 아니다. 이제 조인성은 “내 삶에서 연기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할 정도로 건강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배우로 남고 싶다’는 꿈 같은 건, 내가 바란다고 되는 게 아닌 듯하다. 그건 대중이 평가할 일이다. ‘그 꿈을 위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사람들이 몰라주지’라고 생각하면 밤에 잠 못 잔다(웃음). 그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산다’는 마음으로, 순간순간 흔들리는 나를 붙잡으며 가는 거다.”
지금의 조인성에게,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단 하나를 놓고 다투는 왕관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이미 자신만의 왕관을 찾았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