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일생은 사람의 한 평생과 신기하게도 많이 닮았다. 단순한 알코올 음료를 놓고서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이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수많은 와인들이 제각각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그 가운데 정말 훌륭한 와인이 갖는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름다운 사람들만의 특징이 있듯이.
와인은 생명체의 싸이클을 지녔다
밭에서 영근 포도송이를 따다가 즙을 내서 발효를 시키면, 와인은 세상에 태어날 준비를 마치는 잉태기를 거친 셈이다. 병에 갓 담겨서 출시되는 순간부터 와인의 유년기가 시작된다.
병 속의 알코올과 산, 당분 뿐만 아니라 효모나 포도 찌꺼기, 각종 미생물과 화학물 등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와인은 유년기에서 청년기로 변모한다. 유년기나 청년기의 와인은 마시기에는 적합하지만, 아직 그 와인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현되지 않은 상태다.
사람의 유년기나 청년기처럼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직 균형 잡힌 모습을 찾기 어렵다. 산도가 너무 강하거나, 타닌이 너무 세거나, 아니면 무게감이 지나치게 느껴지는 시기다.
청년기의 와인이 좀 더 나이를 먹게 되면, 모든 구성요소들이 차츰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장년기에 접어든다. 이때의 와인은 마시는 이에게 부드러움과 우아함을 선사해 준다. 보통 이 즈음을 와인의 ‘절정기’ 또는 ‘시음 적기’라고 표현한다.
이후에 세월이 더해지면 와인도 인간처럼 노년기에 접어든다. 색은 바래지고 힘은 약해지지만, 말린 과일과 흙의 기운이 주름처럼 잡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마실 수 없는 음료가 되면, 와인은 그 생명을 다하게 된다.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와인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인생의 각 단계마다 그 나름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지녔다.
한 병 한 병마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갖는다
특히 20세기 후반 양조기술의 발전 덕분에 와인 메이커가 구사할 수 있는 양조 방법도 다양화되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같은 장소에서 와인을 만들더라도, 와인 메이커에 따라서 성격이 확연히 다른 와인들이 생산된다. 같은 해, 같은 장소에서 한 와인메이커가 만든 같은 와인이라고 하더라도, 병의 크기나 보관상태, 그리고 언제 와인을 개봉하느냐에 따라 그 향과 맛이 다르다. 병의 크기가 클수록 와인은 더디게 진화하며, 와인병을 안정적인 온도와 습도에서 보관하면 천천히 숙성이 이루어진다.
특히 와인은 진화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오늘 마신 와인은 내년, 혹은 5년 뒤, 혹은 10년 뒤에 마실 같은 와인과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이듯이, 와인 역시 한 병 한 병 서로 다른 개성과 소중함을 담은 존재다.
척박한 환경이 좋은 와인을 만든다
산도, 당도, 타닌, 무게감 등 와인을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가 어느 하나 너무 강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으면서, 서로 간에 균형이 잡힌 와인이 훌륭한 와인이다. 혼란스러운 정국에 조화와 균형감을 갖춘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요즘, 뛰어난 밸런스를 갖춘 와인이라도 대신 찾아 마셔야겠다.
이석우 - 카카오 공동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중앙일보 편집국 디지털총괄 겸 조인스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번역서 『와인력』을 출간한 와인 마니아다.
이석우 중앙일보 조인스 공동대표 겸 디지털제작 전략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