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싱어’는 1대1 대결, 듀엣, 3중창 등을 거치며 최적의 조합을 찾아왔다. 결승 진출 세 팀이 두 차례 대결로 최종 우승팀을 정한다. 사진은 13일 방송된 손태진·곽동현·이동신·윤소호(왼쪽부터)가 부르는 ‘halo’의 한 장면. [사진 JTBC]
“클래식이 단지 지겹고 어려운 게 아니라 얼마나 고급스런 음악인지 전달해 줘 반가웠다.”(음악평론가 한정호)
“이탈리아어·스페인어를 배우고 싶게 만드는, ‘열공’을 부르는 방송”(ID 꺼벙이조앙)
‘팬텀싱어’의 심사위원이자 프로듀서 들. 왼쪽부터 바다·마이클리·김문정·윤종신·윤상·손혜수.
다음주 최종회를 앞둔 JTBC 음악프로그램 ‘팬텀싱어’(금 오후 9시40분)가 클래식 경연의 새 장을 열고 있다. “한국판 ‘일디보’를 만들겠다”며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단을 뽑는 과정을 3개월여간 보여준 ‘팬텀싱어’는 그간 TV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뮤지컬·팝페라·유럽 가곡 등 범클래식 장르를 아우르며 대중의 폭발적 반응을 끌어냈다. 5일 방송은 시청률 5%(닐슨코리아)를 훌쩍 넘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언급 횟수 등을 합산하는 ‘화제성 조사’에서도 점유율 21.8%(굿데이터코퍼레이션)를 기록, ‘미운 우리 새끼’(16.3%) 등을 제치고 금요일 비드라마 부문 1위에 올랐다.
19일 서울 상암동 JTBC 사옥에서 `팬텀싱어` TOP 12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결승에 진출한 12명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 JTBC]
프로그램에서 불렸던 이탈리아 가곡 ‘ll libro dell’amore’(사랑에 관한 책)가 음원 차트 9위에 오르는 등 크로스오버 음악 열풍도 불러 왔다. KBS FM ‘가정음악’ 진행자인 음악평론가 장일범씨는 “‘팬텀싱어’에 나왔던 노래를 틀어달라는 요청이 이어진다”며 “편중된 음악 시장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했다. 과연 ‘팬텀싱어’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최종 결승에 진출한 `흥스프레스` 멤버들. 왼쪽부터 백형훈 이동신 고은성 권서경. [사진 JTBC]
2000년대 중반 이후 TV예능을 주도해 온 건 오디션·경연 프로그램이었다. 1세대 신인발굴(슈퍼스타K·K팝스타), 2세대 기성가수 대결(나는 가수다·불후의 명곡)에 이어 3세대 퀴즈형(히든싱어·복면가왕) 등 최근까지 다양하게 변주해왔다. 하지만 장르적으론 팝·가요를 벗어나지 못했다. 귀에 익숙한 원재료를 감히 바꿀 엄두를 못 냈던 것이다. 성기완 계원예술대 교수는 “팝·가요 일변도에 식상해하는 대중의 욕구를 ‘팬텀싱어’가 영민하게 포착해냈다”며 “정통 클래식까진 포섭하진 못했지만 ‘클래식은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깨는 데 일조했다”고 전했다.
최종 결승에 진출한 `포르테 디 콰트로` 멤버들. 왼쪽부터 김현수 이벼리 고훈정 손태진. [사진 JTBC]
특히 주목을 받은 건 중저음 음역대였다. 여태 대한민국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건 곧 ‘고음작렬’이었다. 얼마나 높은 음을 내는가를 가창력을 좌우하는 잣대로 삼곤했다. 반면 4중창단을 선발하는 ‘팬텀싱어’에선 테너 등 고음역대 이외 베이스·바리톤도 균형감있게 배분했다. 시청자 박희정(36)씨는 “따스하고 포근한 저음을 들을때마다 그야말로 ‘심쿵’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이었던 김문정 음악감독 역시 “그저 소리 자랑하는 게 무조건 좋은 노래는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줬다”고 했다.
결승까지 진출한 바리톤 권서경(29)씨는 “한국 성악계에서 테너에 비해 베이스·바리톤이 소외됐던 건 사실”이라며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줘 기뻤다”고 전했다.
최종 결승에 진출한 `인기현상` 멤버들. 왼쪽부터 백인태 유슬기 곽동현 박상돈. [사진 JTBC]
불우한 가정환경, 독특한 이력, 팀원 간의 갈등 등 그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흔히 작동했던 드라마적 요소가 배제됐다는 점도 ‘팬텀싱어’의 차별점이었다. 노윤 작가는 “출연자 나이도 가급적 노출하지 않았다”라며 “음악 이외의 것이 음악을 가려선 안 된다는 게 기획의도”였다고 한다. 김형중 PD 역시 “시각장애우 아버지가 있거나 준재벌급 출연진도 있었다. 이른바 ‘감성팔이’ 요소는 충만했지만 유혹에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토리텔링이 줄어들자 남는 건 음악이었다. 특히 최적의 4중창 하모니를 내기 위해선 팀원간의 조화·협력이 필수였고, 이 와중에 서로 배려하고 희생하는 모습 등이 자연스레 부각됐다. 정수연 한양대 겸임교수는 “가까이 있는 옆사람마저 제쳐야 생존한다는 1등 지상주의에 지친 현대인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새삼 환기시켰다”고 분석했다.
연습 과정은 빡빡하고 치열했다. 출연진 대다수가 본업이 있는 터라 보통 오후 10시쯤 모여 밤을 꼬박 새곤 했다. 오페라 출연을 병행한 권서경씨는 몇 차례 코피를 흘렸다고 한다. 성악가 유슬기(31)씨는 “생방송 선곡을 위해 이틀전 4명이 낮 2시에 모여 다음날 새벽 6시에 헤어졌다. 16시간 동안 1000곡쯤 들은 것 같다. 그래도 아직 결정을 못했다”고 했다.
JTBC ‘팬텀싱어’ 내주 최종회 방송
뮤지컬·팝페라·유럽가곡 등 경연
남성 4중창단 뽑는 과정 보여줘
베이스·바리톤 중저음 매력 발산
가요 위주 오디션 프로에 새 바람
걸그룹 득세, ‘프로듀스 101’ 인기 등 최근 TV의 주 공략층은 10~20대였다. 반면 ‘팬텀싱어’는 중장년층에서 외려 반향이 컸다. 시청자 신경화(44)씨는 “‘지금껏 몰랐던 이탈리아·스페인 가곡 듣는 맛에 푹 빠졌다”며 “‘팬텀싱어’를 보는 걸 꽤 폼나는 문화향유인 양 자랑하는 친구가 주변에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한정호 음악평론가는 “정공법을 택한 ‘팬텀싱어’가 TV음악프로그램을 한단계 진화시켰고,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