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에선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다.” 연설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대목이다. 개방과 협력을 역설한 그의 연설을 ‘듣기 좋은 레토릭’이라고 표현한 외신도 있다. 레토릭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시진핑 번역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자유무역 강조한 다보스 연설
세계무역 12% 차지하는 중국 … 보호무역 강화 땐 타격 심각
무역불균형 시정 비전 없고 중국 내 투자장벽 언급 안 해
세계화 대신 경제 세계화 강조 … 인권 등 글로벌 규범 거부 뜻
그러나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중국 경제가 자국의 대외 개방에 있어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 분야는 아직도 합작법인이 아니면 중국 내 투자가 불가능하다. 제도적 진입장벽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비(非)제도적 장벽도 있다.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독일의 미하엘 클라우스 주중 독일대사는 지난 16일 대사관 홈페이지 성명에서 “무엇보다 시장 개방의 구호가 더 이상 빈말이 아님을 믿을 만한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며 “독일 기업들이 여전히 중국에서 두꺼운 시장진입 장벽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주중 미국상공회의소는 18일 중국 진출 외국 기업에 관한 연차 보고서에서 ‘중국에서 환영받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외국 기업이 지난해(77%)보다 4%포인트 높아진 81%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도 “시 주석이 개방과 연결성을 주창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날 선 비판을 날렸다. 인권침해나 인터넷 규제부터 개선하라는 얘기다. 재미있는 건 시 주석이 연설 내내 ‘세계화’라는 말 대신 ‘경제적 세계화(economic globalization)’라는 표현을 신중하게 사용했다는 점이다. 인터넷 개방, 보편적인 인권, 자유선거 등 세계화에 따르는 보편적인 글로벌 규범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구글·유튜브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중국 시장 진입은 아예 봉쇄되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도입을 결정한 한국에 대한 중국의 ‘비공식적’ 보복도 시진핑의 다보스 발언을 무색하게 한다.
“로두스 섬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더 높이 뛰었지. 지금 여기가 로두스라면 누구보다도 더 높이 뛸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허풍을 늘어놓는 청년에게 누군가 말했다.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보라!(Hic Rhodus, hic saltus)” 이솝우화에 나오는 얘기다. 다보스에서 ‘멋진 신세계’를 그려냈던 중국이 이번에 뛸 차례다. 지금, 이곳에서.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