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한국인의 유전자에 욕 잘하는 어떤 인자가 있을 리는 없으니 초등학생들조차 욕을 많이 하는 이유는 아마 어른들이 하는 욕을 보고 배웠기 때문일 게라고 얘기해줬다. 최근의 우리 사회를 보면, 이 설명이 그리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부적절한 언행을 하거나 자신과 의견이 다른 국회의원들에게 일부 사람이 후원금 18원을 보낸다는 보도를 종종 볼 수 있다. 이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설마 그 18원이 욕에 해당하는 그걸까라고 당연히 의심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하필 18원을 보내는 이유가 뭐냐고. 내가 모르는 무슨 정치적 의미가 있느냐고. 그런데 모든 사람이 바로 그 욕이 맞다고 했다. 필자는 8년 전에 큰아들이 겪은 그 멘붕을 경험했다. 아니, 그냥 욕도 아닌 그런 쌍욕이 과연 공개적인 사회적 의사표현 수단이 되어도 괜찮은 걸까?
스스로 도덕적이라 판단할수록
나쁜 행동 하는 ‘도덕적 허가’
더 큰 숭고한 목적 위해서라면
18원을 보내는 게 합리화되나
그런 사람일수록 대를 위해서도
소가 희생되면 안 된다 했잖은가
어떻게 이런 모순이 가능할까. 실제로 자신이 스스로 어느 정도 도덕적이라고 판단되면 오히려 그 다음에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더 쉽게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런 현상을 도덕적 허가(moral licensing)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도덕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느 정도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도덕적인 행동을 더 하려고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충분히 도덕적이라고 인식하면 역설적이게도 비도덕적 행동을 더 쉽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기제는 자신이 옳은 일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고 믿을 때, 역설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는 위험성을 보여준다.
현재 한국 사회는 헌법정신을 위반하고 국정을 농단한 일련의 무리를 색출하고 단죄하는 데 온통 집중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소중한 교훈이 얻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또 다른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통해서라면, 과연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지고 미래의 한국 사회에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지금의 혼란 극복 과정은 먹고사는 것이 다른 어떠한 것보다 소중했던 과거, 경제발전을 위해 수많은 가치가 희생되고 다수를 위해 다수에 의한 폭력을 허용하던 구시대적 관습과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국민의식을 완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강하게 믿을 때, 바로 그때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때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