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투수 유희관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꾸준한 성적을 내는 선발투수다. 풀타임 선발로 자리 잡은 2013년부터 4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따냈다. 2015년엔 국내 선수 중 가장 많은 18승을 올렸다. 지난해에도 15승을 기록했지만 그는 한 번도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했다. 느린 구속 탓이다. 유희관의 직구 구속은 평균 시속 128㎞, 힘껏 던져도 시속 135㎞다. 시속 150㎞ 이상을 던지는 다른 에이스급 투수보다 스피드가 한참 떨어진다. 웬만한 고교생 투수보다도 공이 느리다.
대표팀 가능성 높아진 유희관
‘느림의 미학’으로 4년 연속 10승대
외국인 우타자에 피안타율 0.189
“공이 느려도 성공 증명하고 싶어
오타니와 대결 시청률 폭발할 것”
유희관은 느리지만 정확한 공을 던진다. 특히 오른손 타자 바깥쪽으로 휘는 싱커를 마음 먹은 대로 찔러넣는다. 이 궤적의 공은 특급 우타자도 때려내기 어렵다. 지난해 유희관이 히메네스(LG), 로사리오(한화) 등 외국인 우타자를 상대로 낮은 피안타율(0.189)을 기록한 비결이다. 이들에게 홈런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두산 동료이자 대표팀 주전 포수로 나설 양의지(30)는 “솔직히 말하면 희관이 형이 국제대회에서 통할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는 분명히 강점이 있는 투수”라고 말했다.
유희관은 “인터넷에서 ‘오타니와 유희관이 붙으면 어떨까’란 제목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도 흥미가 생긴다. 나와 오타니가 같은 경기에서 맞대결을 펼친다면 (WBC 단독 중계사인) JTBC 시청률이 폭발하지 않을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유희관은 “오타니는 만화에 나올 법한 굉장한 선수다. 나보다 젊지만 보고 배울 점이 있다. 그의 피칭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말했다.
대표팀 선발 여부와 상관 없이 유희관은 새해 훈련 스케줄을 앞당겼다. 양의지·민병헌·오제일·허경민·장원준·김재환 등과 오는 19일 호주 시드니로 출발한다. 2월 중순으로 예정된 대표팀 평가전에 대비해 일찌감치 몸을 만들기 위해서다. 유희관은 “겨울인데도 한국시리즈 때 만큼 컨디션이 좋다. 따뜻한 곳에서 훈련하면서 공을 던질 수 있는 몸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잠실 라이벌’ LG도 유희관의 승부욕에 불을 붙인다. 지난해 말 LG는 자유계약선수(FA) 차우찬을 영입, 허프-소사-류제국과 함께 강력한 4선발 체제를 갖췄다. 두산의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끈 ‘판타스틱 4(니퍼트-보우덴-장원준-유희관)’에 맞서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유희관은 “LG 선발진을 ‘어메이징 4’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흥행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두산이 우위다. LG가 우리를 따라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