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본 ‘퀴리 부인의 나라’
300여 명의 관람객 사이를 뚫고 ‘버뮤다 삼각지대(수십여 선박·비행기가 실종된 해역)’를 주제로 한 전시물 앞에 섰다. 핸들을 돌리자 수조 안에서 크고 작은 물결이 일어났다. 바닷물과 파도를 형상화한 것이다. 작은 파도가 먼저 친 다음 큰 파도가 치고, 반복될수록 서로 얽히면서 보통 파도의 10배 크기 ‘이상 파랑(波浪)’이 발생한다. 파도는 해수면과 바람의 마찰로 심해지는데, 북대서양의 폭풍우가 이 일대 이상 파랑 현상을 심화시킨다. ‘아!’ 원리를 이해한 순간 모니터가 퀴즈를 냈다. “선박들은 왜 불가사의하게 실종됐을까요?”
‘왜·어떻게’ 과학교육으로 인재 육성
구글·IBM 등 150곳 R&D 센터 유치
EU 가입 후 성장률 회원국의 4배
노벨상 2회 수상자 마리 퀴리까지 배출한 폴란드의 학구열은 뿌리 깊은 ‘지적 호기심(epistemic curiosity)’에서 비롯됐다. 『큐리어스(Curious)』의 저자 이언 레슬리는 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깊이 있는 지식과 이해, 더 많은 노력을 요하면서 방향성을 한층 부여한 종류의 호기심.’ 입시나 입신양명만을 위한 수동적 학구열에는 없는 요소다. 임선하 전 서울시교육복지종합지원센터장도 말한다. “지적 호기심은 정보에 대한 굶주림에서, 혹은 자신의 지식이 불충분함을 깨닫는 데서 비롯된다.”
젊은 인재들의 지적 호기심은 기업이나 국가 입장에선 ‘혁신’의 촉매제다. 바르샤바 외곽에 있는 ‘비고시스템’은 직원 수가 80여 명뿐이지만 ICT를 활용한 적외선 탐지 설비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인정받는 강소기업이다. 2015년 전체 소득이 2007년 대비 3.6배였는데 90% 이상은 유럽과 미국 등 해외에서 발생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개발 사업, 유럽우주국(ESA)의 화성 탐사 프로젝트 ‘엑소마스(ExoMars)’에도 참여했다. 루카시 피에카르스키 비고시스템 이사는 “회사 전체가 신기술에 완전히 적응할 수 있는 인재들로 구성됐다”고 했다. 공장에서 만난 한 기술자가 은연중에 지적 호기심을 드러냈다. “복잡해서 쉽진 않지만 늘 신기술을 배우는 데 도전합니다. ‘카피캣(독창적이지 않고 다른 기업 제품을 모방해 만드는 것)’은 거부합니다.” 폴란드엔 이 회사 외에도 카본 등 신소재, 인공혈액, 가상현실(VR) 콘텐트, 항공 같은 고부가가치 사업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강소기업이 가득하다.
호기심 많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급 인력이 많다는 것은 고부가가치 사업을 추구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임을 의미한다. 이미 바르샤바에만 구글·삼성·IBM·오라클 같은 글로벌 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 150여 곳이 진출했다. 업무프로세스아웃소싱(BPO)·셰어드서비스센터(SSC) 같은 고부가가치 아웃소싱 거점도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폴란드가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부상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실제 폴란드는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와 함께 동유럽의 떠오르는 4개국 ‘비셰그라드(V4)’를 형성, 악전고투 중인 유럽연합(EU)의 새 엔진으로 떠올랐다. 폴란드는 EU 가입 이후 지금까지 경제 규모가 거의 2배로 성장했다. 2005~2015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평균 3.9%로 EU 회원국 평균(0.9%)의 4배 이상이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8개 EU 회원국이 마이너스 성장(-4.4%)에 신음했는데 폴란드만 2.8% 성장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후 지금껏 성장률이 매년 EU 평균치를 크게 상회하면서 EU의 ‘모범생’이 됐다. 이 기간 EU에서 한 번도 역성장하지 않은 나라는 폴란드가 유일하다. 지적 호기심으로 무장한 젊은 인재들이 만들어낸 강소기업과 기술력의 힘이다.
최현수 코트라 바르샤바무역관 차장은 “폴란드는 제조업과 최신 ICT의 융합으로 부가가치 창출을 노리는 ‘4차 산업혁명’을 염두에 두고 R&D와 산업 혁신에 박차를 가하면서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며 “저성장 시대를 맞은 한국에도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바르샤바(폴란드)=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자세한 내용은 이번 주 발행한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1월 16일자(1368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