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라틀리프(28·미국)는 ‘진심’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외국인 선수 라틀리프의 귀화 문제는 새해 초 한국 농구계의 최대 관심사다. 그는 새해 첫날 KCC와의 원정경기가 끝난 뒤 “한국 여권을 갖고 싶다”고 돌발 발언을 했다. 귀화 후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 선수로 뛰고 싶다는 뜻이었다. 농구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 농구는 힘과 높이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국제무대에서 변방으로 밀려난지 오래다. 센터 라틀리프의 귀화 의사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왜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싶은 걸까. 라틀리프의 속내가 궁금했다. 9일 훈련장이 있는 경기도 용인에서 라틀리프를 만났다. 흥이 넘치는 대개의 외국인 선수와 달리 라틀리프는 진중했다. 그는 “프로 생활을 시작한 한국은 제2의 고향이다. 지난 5년간 미국에 머문 건 해마다 두 달 정도 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와 총기사고 안전지대라는 점도 한국의 매력으로 꼽았다.
무엇보다 가족, 특히 딸이 귀화를 결심한 중요한 이유다. 그는 “2015년 수원에서 태어난 딸(레아)이 자신을 한국인으로 생각한다. 미국인을 보면 수줍어하면서도 한국인들 품에는 잘 안긴다. 레아가 한국 유치원을 다니고 한국어를 배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라틀리프는 영어 인터뷰 도중 서툴지만 한국말로 “내 이름은 라틀리프입니다” “형님” “괜찮아” “배고파”라고 말했다.
귀화 원하는 삼성 센터 라틀리프
“어른 공경, 치안 좋은 제2의 고향
돈 때문에 태극마크 꿈꾸진 않아
그랬다면 대만 제의에 응했을 것”
올림픽 갈증 농구계는 반기지만
국내선수로 인정 형평성 논란
팀간 전력차, 귀화 도미노 우려도
한국 남자농구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를 끝으로 올림픽 본선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아시아 챌린지에선 이란에 연거푸 30점 이상 차로 졌다. 김종규(2m7㎝·LG)·이승현(1m97㎝·오리온) 등은 이란의 장신 센터 하메드 하다디(2m18㎝)에게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귀화를 통해 전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이상민(45) 삼성 감독은 “라틀리프(1m99㎝)가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몸싸움에 능하다. 육상 선수 출신이라 스피드도 빠르다. 귀화할 경우 7~8년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체육분야 우수인재의 경우 2010년부터 특별귀화를 통한 한국 국적 취득이 가능하다. 특별귀화는 대한체육회 심의와 법무부 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법무부가 정한 7가지 조건 중 3가지 이상을 충족하면 된다. 라틀리프의 경우 ‘자기 분야에서 성과’ ‘국내외 수상경력’ ‘1인당 국민소득 대비 높은 연봉’의 조건을 충족한다.
라틀리프의 귀화를 반대하는 이도 있다. 김태환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라틀리프가 귀화하게 되면 그의 소속팀은 사실상 외국인 선수를 3명 보유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팀간의 전력 차가 커지게 된다. 귀화 도미노 현상도 우려된다. 찰스 로드(33·모비스)나 애런 헤인즈(36·오리온)도 귀화의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라틀리프는 인터뷰 말미에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귀화 추진을 응원해주는 한국인들에게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 (귀화를) 반대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돈 때문이 아니다’ ‘외국인 선수 3명이 뛰는 수퍼팀을 만들려는 게 아니다’라는 얘기를 꼭 전하고 싶다. 난 그저 한국이 좋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올리는데 보탬이 되고 싶을 뿐이다.”
용인=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