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50대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소년 같은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체구는 왜소하고, 깡말랐다. 얼굴엔 신경질적 성향이 묻어났다. 그는 오랫동안 사법고시를 준비했다가 실패해 학원 강사로 생계를 이어갔다. 최근엔 그마저도 그만뒀다. 강의가 주로 밤에 있으니 매일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은 게 습관이 됐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밥 먹는 것도 귀찮아 살이 점점 빠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를 무시합니다. 정말 화가 나요.” 비판이나 거절·지적에 민감한 것은 물론 열등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사람과만 관계를 맺었다. 자연히 적절한 대인관계 형성의 기회를 놓치게 됐고, 은둔적인 생활이 자연스러워졌다. 전형적인 회피성 인격장애다. 사법고시에 실패한 좌절감이 지나친 경계심으로 악화한 것이 주 요인이었다.
원문 중에 의미 있는 한자를 풀이해 보자. 먼저 ‘음양역(陰陽易)’의 ‘음(陰)’은 밤을 의미한다. 상한론이 저술된 1800년 전 후한시대는 복잡한 음양철학 사상이 성행하기 전이다. 당시의 음양은 지금보다 소박한 의미로 사용됐는데 음은 하루 중 가장 추운 밤을 뜻한다. 반대로 ‘양(陽)’은 하루 중 가장 따뜻한 낮을 말한다. ‘역(易)’은 그릇에 담긴 물을 다른 그릇에 옮겨 담는 모습이 변형된 글꼴로 ‘바꾸다’라는 의미가 파생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기(少氣)’는 어린아이의 기운을 말한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자. 낮과 밤이 바뀌었다는 것은 곧 질서가 뒤 바뀐 것이다. 인류는 해가 뜨면 일어나 밖으로 나가 일을 했고, 해가 지면 수면을 취하는 생활을 지속해왔다. 반대로 생활한다는 건 대대손손 전해져 온 인간의 생체시계를 고스란히 역행하는 것이다. 생체 리듬이 깨지면 정상적인 신체 활동뿐 아니라 정신적인 활동도 이뤄질 수 없다. 일설에 의하면 늦은 밤 1시간의 업무는 낮 4시간 업무의 피로와 견준다고 한다.
이처럼 은둔하는 삶을 사는 사람의 내면에는 어떤 감정이 있을까? 가장 먼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그 아래에는 타인에 대한 불신이 놓여있다. 두려움과 불신은 자발적인 고립의 동기를 부여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삶에 대한 의욕이 없고, 인생을 허무하게 느끼는 경우 많다. 겉보기엔 초연하게 보이나 걱정과 근심, 불안이 많아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불안정한 인간관계는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외적인 조건이 사라지면 더욱 쉽게 와해되고 만다. 인간은 사회적 욕구를 가지고 있어 소통하며 공감하는 생활을 원하지만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적 욕구가 점점 사라지면서 이 공감하는 마음조차 사라지게 된다.
다시 사연의 주인공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어쩌다 사람들을 회피하며 살게 됐을까? 그는 어린 시절 천재로 불렸다. 최상위권의 학교 성적 유지하며 주변의 부러움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가정과 학교에서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면서 평범한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점차 우월감에 젖어 들었다. 그에게는 희한한 습관이 있었다. 낮에 졸고, 밤에 올빼미처럼 공부하는 버릇이었다. ‘졸면서도 일등을 하는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걸 은근히 즐겼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최고의 법대에 진학했고, 사람들은 그의 사법고시 합격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본인 역시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번의 낙방을 경험하게 되자 인생에서 처음 겪는 낙오자의 신세를 견디지 못했다.
비단 이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행동 양식은 일본에서 한때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던 ‘히끼꼬모리’와 매우 흡사하다. 히끼꼬모리는 상처를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인간형을 말한다. 우리말로 ‘은둔형 외톨이’라고 할 수 있다. 혼술·혼밥 문화에서 보듯 최근 한국에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를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홀로’ 지내기를 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가 조만간 사회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 우선 자신의 생활리듬부터 점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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