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 닷컴 버블 시기의 야후, 무선전화 시대의 노키아·모토로라뿐만 아니다. 퍼스널컴퓨터(PC)로 80년대를 풍미한 IBM도 최정상의 위치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아이폰 출시 10년
권불십년 위기론에 휩싸인 애플이 눈여겨볼 라이벌이 있다. 2000년대 중반 모바일 태동기에 이미 도태됐다고 여겨진 마이크로소프트(MS)다. 지난달 13일 MS의 주가는 62.98달러를 기록하며 17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99년 닷컴버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WSJ는 “윈도만을 내세웠던 MS가 ‘구름(cloud)’을 타고 V자 반등에 성공했다”며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200조원)를 돌파하는 기업은 MS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했다. 애플의 현재 시가총액은 6211억 달러, MS는 그보다 약 1400억 달러 적은 시총 3위(4822억 달러)다.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 사티아 나델라가 2014년 1월 MS CEO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캐치프레이즈다. 클라우드 컴퓨팅 전문가인 그는 전임 CEO인 스티브 발머 시대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윈도 온리(Windows Only)’ 정책을 즉시 폐기했다. MS가 윈도에 머물렀기 때문에 애플·구글 등 경쟁자에게 뒤처졌다는 판단에서였다.
나델라는 우선 오피스부터 클라우드 환경으로 변모시켰다. 오피스365부터 MS는 PC에 저장한 워드 문서,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이동 중에도 스마트폰에서 열어볼 수 있게 했다. 저장도 역시 클라우드 환경에서 가능하다. MS 클라우드 서비스의 정점은 애저(Azure)다. 애저는 단순히 서버를 빌려주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아니다.
MS로부터 서버를 빌린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패키지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재고 조정, 영업망 관리, 인사 관리 등 모든 기업 업무가 애저 하나로 가능하다. 지난해 3분기 MS의 전체 클라우드 매출액은 63억8000만 달러(약 7조5000억원). 그중에서도 애저 부문은 116% 급증했다. MS는 지난해 5월 한국에도 최대 12조원을 투자해 서울과 부산 2곳에 데이터 센터를 짓겠다고 밝혔다.
이창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DOS로 번창하고 윈도95를 출시하며 정점을 찍었던 기업이 2010년대 중반 다시 정상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MS는 글로벌 IT업계에서 기이한 회사”라며 “나델라의 적절한 리더십이 IT업계의 공룡이었던 MS를 체질부터 바꿨다”고 설명했다. 발머가 CEO였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MS 임직원들은 사원부터 사장까지 모두 양복에 넥타이를 즐겨 맸다. 약간 고루하다고 비쳐진 MS의 문화였다. 그렇지만 나델라는 개발자 출신답게 피케셔츠를 애용한다.
MS의 부활은 빌 게이츠 창업자 입장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을 일이다. 1955년생 동갑내기인 잡스와 게이츠는 75년과 76년에 각각 애플과 MS를 창업했다. 때로는 친구였고, 때로는 경쟁자였던 애증의 관계다. 80년대에는 매킨토시를 개발한 잡스가 먼저 치고 나왔다. 90년대에는 ‘윈도 혁명’을 일으킨 게이츠가 앞서나갔다. 윈도95의 출시는 그 정점이었다. 2000년대에는 잡스가 만든 아이팟·아이폰이 전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잡스의 아이폰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애플이 라이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로 기민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라며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MS는 윈도와 익스플로러라는 독점적 시장을 등에 업고 공룡 조직이 돼 기민성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PC 사업에서 얻은 경험은 한 가지 디바이스가 영원한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IT 기업의 개혁이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되는 것이다.”
나델라 CEO가 지난해 11월 니혼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위기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고 강조했다. 이번에는 애플이 다시 기민해져야 할 때다. 애플이 MS를 벤치마킹해야 할 시대가 다가온 것일지 모른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