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이 들지 않음
‘과속스캔들’(2008, 강형철 감독)은 아예 ‘아버지처럼 보이지 않는’ 현수(차태현) 앞에 갑자기 그의 딸(박보영)과 손자(왕석현)가 들이닥친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비춘 코미디였다. 더 단적인 예를 들어 볼까. ‘사랑하기 때문에’에서는 10대 배우 김유정과 친구처럼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세월이 흐른다 차태현은 그 자리에 남겨 두고
그가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얼굴이 주름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보다 어린 상대와 함께할 때 ‘나는 그걸 이미 겪어서 다 알고 있어’라는 식의 태도를 취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상대가 누구든 해맑게 장난치고 친구처럼 농담을 주고받는 차태현의 모습이 훨씬 익숙하다. 정확히 말해 그의 얼굴과 미소뿐 아니라 태도 역시 나이 먹지 않았다.
차태현의 설명은 이러하다. “부모님이 남들에게 ‘그렇게 키우다가 애들 망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형과 나를 친구처럼 대하셨다. 나도 지금 내 아이들에게 그렇다. 나한테는 그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말을 이렇게 바꿀 수 있을까. 그는 나이 먹는 법을 모른다.
2. 1인 다역과 차태현스러움
차태현의 1인 다역이라 하니 자연스레 ‘헬로우 고스트’(2010, 김영탁 감독)가 떠오른다. 그는 이 영화에서 ‘상만(차태현)의 몸에 네 귀신이 들러붙는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1인 5역 연기를 펼쳤다. “‘헬로우 고스트’에서는 내가 꼬마·여자·골초·할아버지 귀신 씐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사랑하기 때문에’는 거꾸로다.” 차태현의 말이다. 각각의 등장인물이 이형의 영혼을 입는 설정이기 때문에 그 배우들이 ‘차태현스러움’을 연기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김윤혜, 성동일, 배성우, 선우용여, 임주환 다섯 배우의 연기에서 차태현스러움이 무엇인지 엿보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 교집합은 아마도 그 스스로 말하는 “자연스러움” 혹은 “평범함” 아닐까. “난 연기할 때 자연스러움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봐도 나는 특징을 콕 집어 말하기 힘든 배우다. 한마디로 평범하다.” 그것은 다시 말해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배우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차태현스러움’의 정체란 바로 그것이다.
3. 한 끗 차이
그가 말하는 한 끗 차이란 이런 것이다. “제작자가 개그맨 이경규 선배라는 이유로 다들 ‘복면달호’에 출연하길 꺼렸다. 시나리오를 읽어 보니, ‘주인공이 복면을 쓰고 노래한다’는 설정이 획기적이었다. 그래서 출연을 결정했다. ‘과속스캔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작 단계만 해도 그 영화가 관객 824만 명을 모으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존재조차 모르던 자녀가 주인공을 찾아오는 설정은 흔하지만, 자녀에 손주까지 줄줄이 찾아오는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상업영화는 바로 그런 한 끗의 색다름을 선보이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 작품만의 색다른 한 끗이 있다면, 다른 배우들이 꺼리는 작품이어도, 감독이 신인이어도 차태현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가 비슷비슷한 장르 안에서도 질리지 않는 배우로 살아온 비결이다.
차태현이 말하는 ‘사랑하기 때문에’의 한 끗은 “유재하의 노래”다. “내 또래에게 유재하의 노래는 ‘세대의 음악’ 같은 것이다. 그 노래를 모티브로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가 현재 촬영 중인 2부작 영화 ‘신과함께’(김용화 감독)는 동명 웹툰을 스크린에 옮기는 작품. 극의 배경인 지옥을 CG(컴퓨터 그래픽)로 구현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장면을 블루 스크린 앞에서 촬영한다. “한국영화의 색다른 도전에 함께하고 싶었다.” 차태현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용감하다.
4. 첫사랑의 아이콘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얘기도 어디까지나 너스레로 들린다. 왜냐하면 차태현이 뒤이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나 쭉 사귀었으니까, 아내는 내가 아무것도 아닐 때부터 소위 잘나갈 때까지의 모습을 다 봤다. 신기한 게, 사귀던 중간에 잠깐씩 헤어지면 늘 내가 먼저 ‘다시 만나자’며 찾아갔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잘나가도 이상하게, 아내와 헤어지면 그 모든 것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그런 게 사랑이겠지?” 차태현의 멜로는 연기의 영역을 넘어 그의 삶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