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33곳의 부동산 PF 관련 우발채무는 2016년 9월 말 기준 23조2705억원이다. 부동산 시장 호황이 시작된 지난 2014년 이후 증권사 우발채무는 4조원 가까이 늘었다. 증권사 가운데 메리츠종금증권의 우발채무가 5조4459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 잔액 비율은 298%에 달한다. 그 다음으로 교보증권(119%)·하이투자증권(114%)·HMC투자증권(88%)·현대증권(67%) 순으로 많았다.
2013년 신용공여 허용 이후 증가세
대출 규제, 금리 인상에 부담 커져
증권사 “우려할 수준 아냐” 반박
여기에 부동산 시장 활황에도 해외 사업 부진으로 건설사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은행들도 관련 보증을 기피하면서 증권사들이 더욱 공격적으로 나섰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주거시설에 대한 유동성 공여는 42%, 신용 공여는 75%인 것으로 나타났다. 홍성기 나이스신용평가 수석 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서울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늘어나면서 수익이 더 높은 신용공여가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덕분에 증권사들의 신용공여 이자 수익도 늘었다.
금융감독원의 국내 증권사 2016년 3분기 누적 영업실적 따르면 국내 증권사 유동성 공여와 신용공여 이익은 3893억원로 전년 같은 동기(3442억원) 보다 늘었다. 홍성기 수석연구원은 “신용공여가 늘면 증권사들의 리스크 관리와 신용도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지만 수익 확보를 위한 다른 대안이 마땅치 않아 증권사들은 지금으로선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집단대출 규제로 부동산 경기 둔화가 이미 감지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지난 12월 14일 1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추가로 2~3차례 더 올릴 가능성도 있다. 금리가 오르면 부동산 PF 대출 이자부담도 커져 사업장도 부실화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과거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를 촉발시킨 원인도 부동산 PF 관련 우발채무였다.
부동산 PF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저축은행의 주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니 PF가 부실화될 위험도 적었고 높은 수수료도 챙길 수 있었다. 그 결과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여신규모는 2007년 상반기 8조3000억원에서 2010년 17조4000억원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부동산 PF 자산의 부실은 급속도로 진행됐다. 수십 개의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최근 증권 업계에서 나오는 우려도 비슷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6년 11월까지 미분양주택 가구 수는 5만7582가구로 전년 같은 기간(4만9724가구)보다 15% 늘었다. 홍준표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우발채무 대부분이 PF사업과 연관돼 있어 부동산 경기 침체 때 우발채무 현실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모든 우발채무에 충당금 쌓아야
전문가들도 아직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안지은 한국기업평가 연구위원은 “2015년 말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크게 늘었던 우발채무 비중이 줄어들었다”면서도 “부동산 경기 둔화로 증권사들도 무리해서 늘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발채무 이행률(부실률)이 2.26%에 불과하다.
정부도 부동산 PF 관련 우발채무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재무건전성 악화에 대한 예방에 나섰다. 이르면 2017년 2분기부터 증권사들은 ‘정상’ 등급을 포함한 모든 우발채무에 대해 일정 비율의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증권사의 채무보증 충당금 적립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투자업 규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대출 채권은 위험도에 따라서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등 5단계로 분류된다. 정상 등급 대출채권 대해서는 0.85% 수준의 충당금을 쌓고 요주의 등급 대출채권은 7%의 충당금을 쌓게 된다.
업계에서는 증권사들이 우발채무를 대비해 쌓아야 하는 충당금을 2000억원 안팎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의 지난 3분기 누적 순이익(1조8079억원)의 10%가 넘는 금액이다. 안지은 연구위원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경기 급랭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증권사 우발채무와 관련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