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불과 23일 만에 공개일정을 가진 것부터 부적절했다. 더욱 우려되는 건 박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드러낸 상황 인식이다. 진정성 있는 반성은커녕 모든 의혹에 변명과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인(私人) 최순실과 한 몸이 돼 국정을 농단한 의혹에 대해 “최와 공모하거나 봐준 일은 손톱만큼도 없다”며 부인했다. 삼성 합병 지원 의혹에 대해선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특검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청와대 지시로 한 일”이라 증언했는데도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뗀 것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모르는 일”, 차은택씨의 인사개입 의혹엔 “누구와 친하다고 누구 봐줘야 되겠다고 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나 정황은 제시하지 않았다.
모든 의혹에 부인·모르쇠로 일관
지지층 결집·탄핵기각 유도 꼼수
공식일정 중단과 탈당만이 해법
박 대통령은 26년 만의 보수여당 분열에 대해 “말하기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자신의 실정으로 보수가 추락한 데 대한 책임론을 피하려고 말을 자른 듯하다. 세월호 7시간 동안 ‘관저에 외부인이 들어왔다’는 의혹에도 “기억을 더듬어보니”라는 표현을 쓰며 부인했다. 자신의 해명을 뒤집는 증언이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느낌이다. 이런 식의 해명을 진정성 있다고 믿어주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박 대통령의 인식이 이런 수준이니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가 민심에 아랑곳없이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1일 인적 청산 범위에 대해 “언론에서 보도되듯 확대된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본인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어 사회봉사를 10시간 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묵인·방조한 책임이 큰 여당의 지도자가 ‘봉사 10시간’으로 때우고 가겠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인적 청산의 ‘범위’가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면 ‘리셋 코리아’의 주도권은 야권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할 일은 기자들의 펜과 카메라를 뺏은 뒤 자기변호를 위한 간담회를 여는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새누리당을 떠나 당과 국회가 개혁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국정 농단의 오점을 조금이나마 씻고 국민의 용서를 구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