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 해 마무리도 남달랐다. 이 9단은 올해 마지막 국내 대회인 제35기 KBS 바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26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35기 KBS 바둑왕전 결승 3번기 2국에서 이 9단은 나현 7단을 상대로 274수 끝 백 1집 반 승을 거두며 종합 전적 2대 0으로 우승을 결정지었다. 이날 시상식이 끝나고 이 9단을 만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소감과 내년 목표를 들어 봤다.
- 한 해를 돌아보면.
- “올해는 알파고와의 대결로 좋은 경험을 했지만 응씨배·삼성화재배에서 4강에 그치면서 아쉬움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힘든 한 해였는데 KBS 바둑왕전 우승으로 2016년을 마무리할 수 있어 기분 좋다.”
-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 “알파고와의 대결로 많은 에너지를 쏟았지만 그보다는 올해 하반기부터 스스로 승부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졌다. 점수로 매기자면 50점도 안 되는 것 같다.”
-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이기고 싶은 욕심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이전까지는 승부의 경험을 좋은 방향으로 승화시켜 왔는데 알파고와의 대결 이후에는 그러지 못했다. 짧은 기간에 반드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너무 컸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히 결과도 좋지 않았다.”
- 내년 목표는 무엇인가.
- “내년에도 바둑에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은퇴 수순을 밟을 것이다. 승부사로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한 해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보려 한다. 그래서 내년이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 만족도에 대한 기준은.
-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대회 우승 같은 성적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느끼는 바둑에 대한 만족도다. 승부를 즐기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바둑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 은퇴까지 거론하며 배수진을 치는 이유는.
- “스스로 한계를 정해 놓아야 의욕이 생긴다. 이렇게 하지 않고 어중간한 상태를 유지하면 만족도 못하면서 그대로 안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프로기사로서 내 나이가 적지 않기 때문에 내년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정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 은퇴한다면 이후 계획은 무엇인가.
- “2018년부터 바둑 인생을 정리하면서 본격적으로 생각해 볼 것 같다. 승부사 인생은 정리하지만 이세돌 바둑도장 운영 등 보급 활동은 계속할 것이다. 다른 것을 해볼 수도 있는데, 30대 중반이라 사회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기에 적당한 때라고 생각한다.”
- 한국 바둑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나.
- “중국 프로기사의 층이 워낙 두꺼워 쉽지 않을 것 같다. 중국은 커제 9단 같은 최상위 선수의 컨디션이 떨어져도 대체할 선수가 많다. 하지만 우리 는 한 명에게 모든 걸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박정환 9단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대체할 선수가 없었고, 이에 따라 한국의 세계 대회 성적도 좋지 않았다.”
- 커제 9단을 상대할 한국 선수가 마땅치 않은 것 같다.
- “박정환 9단은 국내 랭킹 1위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는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아직 어리기 때문에 마음가짐을 편하게 하면 충분히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진서 6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나이가 어리고 속기를 잘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보완해야 할 부분도 많다.”
- 내년 초 알파고와 커제 9단의 대결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 “다시 나타나는 알파고를 사람이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국적을 떠나 후배 기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커제가 두 판 정도는 이겨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내가 다시 알파고와 둬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웃음).”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