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캐비닛은 이른바 페티코트 어페어(Petticoat affair)로 불리는 ‘속치마 스캔들’로 시작됐다. 유부녀와 바람을 피워 결혼까지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존 이튼을 잭슨이 전쟁장관에 앉히자 캘훈 부통령 부부와 캘훈 측 인사들이 이튼 부부를 워싱턴 사교계에서 소외시키며 잭슨파와 캘훈파로 갈렸다. 여기엔 연임을 노렸던 잭슨과 차기 대통령을 꿈꾸며 잭슨의 연임에 반대했던 캘훈 간의 정치적 갈등도 작동했다.
시초는 앤드루 잭슨 때 자문그룹
변호사·법관·의원 등 작은정부급
레이건, 막역한 재계 친구들로 꾸려
NYT “모든 대통령에 비공식 조언단”
“자문해 주고 사익 챙기는 것 없어
최순실 국정 농단 스캔들과 달라”
키친 캐비닛엔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을 맡은 인사도 있다. 존 F 케네디 전문가인 필립 고더티 주니어 퀴니펙대 겸임교수는 저서 『케네디의 키친 캐비닛과 평화의 추구』에서 변호사인 데드 소렌슨을 키친 캐비닛에 포함시켰다. 케네디 대통령이 “나의 지식 수혈 은행”이라 치켜세웠던 그는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할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지 물어라”라는 케네디의 유명한 취임 연설 작성을 도운 이다. 그런데 소렌슨은 케네디 상원의원의 공식 라인인 법률보좌관 출신이고, 케네디 정부 출범 후엔 백악관 고문으로 공조직에 편입된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선 지지층을 규합하는 유인책으로 ‘키친 캐비닛 명예 회원’이라는 증서가 등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며 민주당에 후원하는 일반인들에게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이 증서를 보냈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대외 정책이 한계에 봉착했을 땐 키친 캐비닛으로부터 지혜를 구하라는 권고를 받아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이 대패하는 2014년 중간 선거를 다섯 달 앞둔 6월 포린폴리시는 시리아 사태 등을 지적한 뒤 “(외교 분야에서) 경력이 검증된 중량급 인사에 도움이 받으라”며 “이 같은 키친 캐비닛은 제임스 존스처럼 될까 걱정할 필요 없이 대통령에게 자유롭게 조언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제임스 존스는 오바마의 가신 그룹들과 충돌하다 2010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서 중도 하차했던 인사다. 여기서 키친 캐비닛은 대통령이 귀를 열고 쓴 소리도 들으라는 취지다.
미국 정치학자인 션 윌런츠 프린스턴대 교수는 “잭슨 대통령이 시작해 이후 미국 대통령이 모방했던 키친 캐비닛과 불법적인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행위(influence peddling)는 명백히 다르다”고 본지에 답변했다. 월스트리트저널·블룸버그통신 등 미국 언론들은 최순실 사건을 ‘불법적 영항력 이용한 국정 농단 스캔들’이라는 표현으로 보도해 왔다. 그는 “키친 캐비닛은 비공식적으로 정기적 자문을 구하는 믿을 만한 이들로, 각료들과는 달리 정부 기관을 맡는 의무가 없는 만큼 개인적 이해 및 기관의 이해와 공익 간의 충돌 없이 솔직한 자문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윌런츠 교수는 따라서 키친 캐비닛의 전제로 “자문을 해주며 대가를 챙기는 게 없어야 하고, 사익 또는 자신들의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는 게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의 측근(inner circle)이 신뢰하는 인사가 정부와 정책에 대한 통제권을 얻어 사익을 도모하는 것은 키친 캐비닛의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윌런츠 교수는 잭슨 대통령을 조명한 책인 『앤드루 잭슨』의 저자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mfemc@joongang.co.kr